경제계, 환경단체 모두 "사회분야별 비용 공개하라"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로 상향 조정하고 2050년엔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데 대해 각계각층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는 지적들이다.
19일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국무회의 상정 이전, 전면 재검토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정반대 입장에 서 있는 환경단체들은 "산업계의 단기적 이해를 대변하느라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을 할 수 없다고 결론 낸 것"이란 비판을 쏟아냈다.
양측의 입장은 정반대지만 공통점도 있다. 국가 미래를 결정하는 시나리오를 불과 5개월 만에, 그것도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없이 결정지을 수 있느냐는 얘기다.
촉박한 일정... 충분하지 못한 의견 수렴
일단 일정 자체가 너무 촉박했다. 지난 5월 출범한 탄중위는 8월 3개안 초안을 내놨고, 10월에 최종안을 내놨다. 불과 5개월여의 시간 동안 탄중위는 수백 개가 넘는 각종 단체들과 간담회를 열고, 일반 국민 530명과 한 달가량 ‘탄소중립시민회의’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탄중위와 간담회에 참석한 이들의 말은 다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산업계 간담회를 한다 해서 9월 말, 10월 초 건의사항을 전달했는데, 되돌아보면 그때쯤이면 이미 탄중위의 2030NDC 초안이 어느 정도 확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들러리만 세운 게 아니냐는 얘기다.
간담회에 아예 참석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 이들도 있다. 무슨 기준으로 간담회 참석 여부를 갈랐는지 의문스럽다는 이들도 있다.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기업이라 해서 탄소중립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해보겠다는 업체들도 많다"며 "으레 기업은 앓는 소리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논의 중심이 지나치게 정부와 탄중위 중심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공론장 의견 수렴이라면서 '대외비'
또 하나의 불만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대외비’가 많다는 점이다. 지난 8월 탄소중립시민회의에 제공한 자료집을 비공개 처리하고, 지난 8일 2030 NDC 상향안 초안 또한 각 분야 탄소배출량을 간략한 수치로만 제시했다. 산업별 구체안은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에게만 제공됐다.
공론장에서 숙의하겠다는 탄중위의 이런 행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김녹영 센터장은 "기업별 입장에서는 시나리오별 비용이 나와야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그게 없으니 각 산업별 협회들이 자체적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도 이런 사례가 없다고 지적한다. 가령 영국은 2019년 '2050 에너지전환 방향'을 논의하면서 27가지 발전기술 유형에 따른 70만 개 시나리오와 각 시나리오별 비용을 공개해 일반에 공개했다. 유럽연합(EU)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논의하면서 △탄소국경조정세를 관세로 부과할지 △소비세로 부과할지 △탄소배출권과 연계시킬지 등 각 시나리오별 산업영향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그나마 이번 최종안 발표 때는 국내총생산(GDP), 고용 등 일부 경제 지표를 내놨으나, 그나마도 어떤 가정 아래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이 있으면, 당연히 그에 따른 영향평가보고서를 내야 하는데, 탄소중립 정책에는 그게 없다"고 꼬집었다.
이제라도 정보 공개하고 의견 수렴해야
이 때문에 탄중위가 탄중위 자체의 임무를 방기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탄중위는 단순히 이런 목표를 달성하자고 던지는 위원회가 아니라, 충분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면서 탄소중립이란 목표가 왜 필요한지, 그 과정에서 어떤 불편이 있는지 이해를 구하고 설명을 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 9월 탄소중립시민회의 참여단 중 4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탄소중립으로 인한 불편을 얼마나 감수하겠느냐는 질문에 ‘현재 삶의 질이 낮아지더라도 감수할 수 있다’는 답변은 단 15.4%에 그쳤다.
이제라도 탄소중립에 따른 사회분야별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 적극적으로 기업의 탄소 배출 책임을 비용으로 계산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한재각 기후정의연구활동가는 “기업들이 탄소중립의 피해자인 양 전기세 인상 운운하면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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