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도초도 팽나무 10리 길과 수국공원
신안 도초도(都草島)가 이름처럼 꽃과 나무의 성지가 됐다. 섬으로 들어서면 ‘팽나무 10리 길’이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녹색도시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축하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
팽나무 10리 길은 섬의 관문인 화포선착장에서 수로를 따라 약 3.5㎞ 이어진다. 수령 70~100년 된 팽나무 716그루가 조붓한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길 양편에서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이 많은 팽나무는 어디서 났을까. 나무마다 출신 지역을 적은 팻말이 걸려 있다. 멀게는 충남 홍성과 경남 진주에서 온 나무도 있고, 대개는 고흥 해남 장흥 등 전남 해안 지역이 고향이다.
팽나무는 느티나무 푸조나무 등과 함께 수명이 가장 긴 축에 속한다.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대접받고, 해안가에는 방풍림으로도 심는다. 팽나무는 신안의 보호수 중 80%를 차지하는 상징적인 나무다. 팽나무 10리 길은 시목해수욕장 외에 이렇다 할 관광 자원이 없는 도초도에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군청 공무원들이 서남부 해안 지역을 돌아다니며 쓸모없는(?) 팽나무를 구하기 시작했다. 밭둑에 덜렁 자라 농작물에 그늘을 드리우는 애물단지 팽나무, 산비탈이나 농수로에 뿌리내려 천대받던 팽나무가 대상이었다. 군에서 오래된 팽나무를 모은다는 소문이 퍼지자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공사에 방해가 돼 뽑아내려고 하는데 가져갈 거냐는 문의가 이어졌고, 장흥의 한 농민은 밭 한가운데에서 농지를 잡아먹는 팽나무를 뽑아갈 수 있겠느냐고 전화를 해오기도 했다. 이렇게 제자리를 못 찾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나무들이 도초도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기본적으로 키가 10m 넘는 나무를 이송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5톤짜리 트럭에 실려 암태도로 이송된 나무는 다시 배를 타고 도초도로 옮겨졌다. 이송 작전은 교통량이 많은 낮을 피해 주로 밤에 진행됐다. 팽나무 숲길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도 처음엔 반응이 시큰둥했다. 폭 16.5m의 논을 사들여 성토한 다음 나무를 심을 계획이었으니 반대도 많았다. ‘그늘이 져 농사 망친다’거나 ‘참새떼가 몰려들면 어떡할 거냐’며 항의하는 주민도 있었다. 그래도 장차 이 숲이 도초도를 먹여 살릴 거라는 설득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시 김대환 부면장이 전해 준 후일담이다.
팽나무 숲길 조성 공사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3월 시작해 올 2월 마무리했다. 6월에는 ‘환상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장식도 열었다. 팽 당할 처지의 나무들이 모여 명품 숲을 이뤘다. 갓 조성한 숲길이지만 기본적으로 큰 나무여서 운치가 제법 그럴싸하다. 더 크고 풍성하게 가꿀 의무가 군청과 주민의 몫으로 남았다. 바닥에는 수국과 수레국화, 패랭이 등을 심었다. 지금은 패랭이가 알록달록한 색깔을 뽐내고 있다.
숲길과 나란한 월포천은 1970년대 농지를 조성하면서 건설한 인공 수로다.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주변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으는 구조인데, 웬만한 강처럼 폭이 넓다. 바람이 없는 날, 팽나무 가로수가 잔잔한 수면에 비친 모습이 또 일품이다. 신안군은 장차 이 수로에 나룻배를 띄울 계획이라고 한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수국공원이 이어진다. 폐교한 도초 서초등학교 부지와 주변 야산에 15종 3만 그루의 수국을 심어 꾸민 정원이다. 6~7월이 제철이라 수국은 거의 지고 없지만, 돈나무 후박나무 해송 동백 등 자생하는 나무가 산책로 곳곳에서 본래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공원 꼭대기에 오르면 수국 빛깔(블루라이트)로 지붕을 장식한 마을 풍경이 정겹게 내다보이고, 그 너머로 멀리 서해 바다가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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