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대통령 이어 지지율 17% '2위'
반이민, 반무슬림 주장으로 인기 끌어
제무르 견제 위해 마크롱마저 '우향우'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방송인이 프랑스 정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인 활동 경력도 없고, 정식으로 내년 대선 출마 선언을 하지도 않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급으로 떠오른 것이다. 단순 지지율로는 프랑스 내 ‘극우의 상징’ 마리 르펜 국민연합 대표마저 이미 제쳤다. 재선을 노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입지까지 위협할 태세다. 6개월 앞으로 닥친 대선 판도를 뒤흔드는 건 물론, 그의 급부상과 함께 프랑스가 ‘우향우’ 조짐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년 4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극우 방송인 에리크 제무르(63)가 이민자와 무슬림, 좌파를 겨냥한 원색적 비판을 이어가며 열렬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달 13일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앤터랙티브가 실시한 지지율 조사에서 제무르는 17%를 기록, 마크롱 대통령(24%)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달 같은 기관이 그를 처음으로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을 때만 해도 7%에 그쳤으나, 두 달도 안 돼 10%포인트나 급등했다. 심지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2위였던 극우의 기수 르펜(15%)마저 추월했다.
외신들은 ‘충격적’이란 반응이다. 정치판에 뛰어든 적도, 소속 정당이 있는 것도, 대권 도전을 선언하지도 않은 ‘정치적 자연인’인 제무르가 단기필마로, 그것도 단숨에 ‘보수의 차기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장다니엘 레비 해리스 이사는 “그처럼 짧은 시간 안에 대선 후보로서 급격히 지지율을 끌어올린 정치인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기 비결은 거침없는 언사다. 일간 르피가로 논설위원 출신인 그는 2014년 ‘프랑스의 자살’이란 책을 출간하며 우파 진영의 스타 지식인이 됐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 운동(68혁명) 가치와 관련, “이민자·동성애 문제를 불러오며 국가를 망쳤다”는 도발적 선언은 극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만 명 외국인을 추방해야 한다” “마약 밀매자들은 흑인과 아랍인”이라는 인종 차별 발언으로 두 차례 기소된 전력도 있을 정도다.
프랑스에는 600만 명의 무슬림이 산다. 전체 인구(6,700만 명)의 약 9% 수준으로, 유럽 최고 비율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극단주의 성향 무슬림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자, 현지인들 사이에선 이민자, 특히 이슬람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다. 바로 이 틈을 파고들어 ‘가려운 곳’을 긁어 준 게 제무르였다. 과격 발언 일상화, 강경한 이민 대응 등으로 ‘분열의 정치’라는 비난을 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빗대 ‘프랑스의 트럼프’란 별명까지 얻었다.
물론 제무르가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을 쉽게 저지할 것으로 보긴 힘들다. 해리스의 가상 2차 투표에서, 두 사람이 맞붙을 경우 ‘43% 대 57%’로 패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1, 2위 후보에 대해서만 2주 후 결선 투표를 치른다. 일 대 일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다만 이번 대선이 공고한 ‘우파 경쟁’이 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도우파 성향의 마크롱 대통령을 제외하면, 제무르와 르펜에 더해 그자비에 베르트랑 후보(14%)까지, 여론조사 2~4위에 극우 또는 강경 우파가 차례로 포진해 있다. 제무르, 르펜 지지율만 합쳐도 32%로, 마크롱 대통령을 뛰어넘는다. 현시점까진 어느 한 진영도 단일화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손을 잡으면 극우 정권 출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제무르 견제를 위해 마크롱 대통령마저 ‘우회전 깜빡이’를 켰다는 점이다. 최근 그는 알제리 등 전통 우호국인 북아프리카 3국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일부 모스크(이슬람 사원) 폐쇄 절차를 비롯, 극단적 이슬람 선전 단체 해산도 진행 중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민 정책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며 반(反)무슬림·반이민 정책 강화에 나선 것이다. 중도우파 진영이 ‘제무르 지지’로 돌아서는 걸 막으려는 고육책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제무르가 프랑스에서 정치적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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