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영상 등 결정적 단서 없는 상황에서
범행 경위 규명에 어려움 주는 요인 속출
전문가 "독극물 극소량이면 검출 안 될 수도"
회사 사무실에서 남녀 직원이 생수를 마시고 쓰러진 이른바 '생수병 사건'과 관련해, 숨진 피해 남성과 달리 여성의 혈액에선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동료 직원 A씨(사망)를 유력한 용의자로 입건하고 A씨의 독극물 구입 경로를 확인해 혐의를 굳히고 있지만, 이처럼 해석하기 쉽지 않은 변수가 속속 등장하면서 사건 경위 규명이 쉽지 않은 형국이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앞서 18일 서울 서초구 소재 회사 사무실에서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시고 의식을 잃었던 직원 2명 중 사건 당일 회복해 퇴원한 여직원의 혈액에선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중태에 빠져 입원 치료를 받다가 23일 오후 숨진 남직원 혈액에서 독성 물질인 아지드화나트륨이 검출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 물질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피의자 A씨의 자택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피해 남성을 부검한 뒤 A씨 혐의를 종전 특수상해에서 살인죄로 변경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여직원이 먹은 독극물이 극소량이라면 체내에서 관련 성분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혈액에서 독극물이 검출되려면 상당한 양을 섭취해야 한다"며 "(여직원이) 당일 빠르게 회복할 정도였다면 독극물이 소량이라 몸에서 희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 또한 여직원이 사건 당일 의식을 잃는 등 중독 증상을 보였던 만큼 A씨 혐의 유지에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앞서 두 직원이 사건 당일 마신 생수병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은 데 이어 여직원 혈액 검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면서 범행 경위를 둘러싼 의문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회사 사무실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A씨가 독극물을 어떻게 투입했는지 밝히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생수병을 바꿔치기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피해자들의 음독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피해 여직원이 당시 생수뿐 아니라 커피를 마신 점도 수사상 고려 대상이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의자 A씨의 휴대폰과 노트북 등을 조사해 구체적인 독성 물질 구입 경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말 연구용 시약 전문 쇼핑몰 사이트를 통해 아지드화나트륨을 구매했다. 해당 사이트는 소속기관 등록을 해야 물품 구입이 가능한 구조였는데, A씨는 자기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던 다른 회사의 사업자등록증을 도용해 물품을 구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동기 수사는 별다른 진척이 없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범행에 앞서 관련 글이나 유서를 남기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관계자 진술만을 바탕으로 정확한 동기를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포렌식과 관계자 추가 조사 등을 더 진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평소 인사 조치에 불만을 품었을 수 있다는 동료 직원의 진술을 확보했지만, 범행 동기를 밝힐 결정적 단서라기보다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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