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이 아니다. 몸 길이만 12m, 무게는 7.2톤에 달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벽을 찢고 나온다. 증강현실(AR) 기술과 UHD 화질로 부활한 티라노가 훅 콧김을 내뿜자 그 옆에 선 187㎝ 키의 배우 주지훈이 몸을 휘청인다. KBS 3부작 다큐멘터리 '키스 더 유니버스'는 이 폭군룡의 포효로 본격 시작을 알리더니 이내 최후로 내달린다. 6,600만 년 전 지구 한 귀퉁이에 떨어진 소행성은 공룡 시대를 끝장낸다. 세계의 끝에서, 인류가 탄생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쏘아 올려진 지난 21일 방송된 '키스 더 유니버스' 1회는 인간을 '우주적 존재'로 불러올린다.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성장 드라마' 그리고 2021년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 '키스 더 유니버스'를 연출한 송웅달 PD가 말한 이 작품의 콘셉트다. 모처럼 지적 탐구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반가운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건조한 과학 지식의 향연이기보다는 제목처럼 낭만적인 편이다. 송 PD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주와 인류의 기원을 살피는 '빅 히스토리' 가운데서도 현시점에서 꼭 할 수 있는 이야기면서 동시에 평소 우주나 천문에 대해 어렵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이야기로 좁혀 3부작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20만 년간 지구라는 조그마한 돌덩이에 갇혀 살던 인류가 이제 지구 바깥으로 발돋움하는 엄청난 변화의 시점이 도래한 거죠." '차마고도', '누들로드', '순례', '슈퍼피쉬' 등 대작을 선보였던 KBS가 이번엔 우주로 눈을 돌린 이유다. "기대감은 충족시키되 예상은 빗나가는 게 좋은 콘텐츠"라는 송 PD의 지론대로 '키스 더 유니버스'는 새로움을 더했다. 정통 다큐멘터리 작법을 따르지 않는 대신 '체험형 다큐멘터리 쇼'를 내세운다. 우주여행 가이드로 나선 프리젠터 주지훈의 존재가 눈에 띈다. 그의 연기가 대형 비디오 화면, AR 캐릭터와 만나 이야기의 흡인력을 높인다. 국내 언론 최초로 '키스 더 유니버스'가 공개하는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보카치카 발사장과 화성행 우주선의 완전체도 관심을 끈다. 이는 28일 방송되는 2회 '화성 인류'에 담긴다.
'키스 더 유니버스'는 만드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송 PD와 공동연출한 나원식 PD가 함께 낸 기획안이 2021년도 대기획 사내 공모에 공식 선정된 건 2019년 3월. 같은 해 10월 팀을 꾸려 본격 제작에 나섰다. 송 PD는 "대기획 공모를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국내 방송사는 KBS가 유일하다"며 "이런 대기획이야말로 공영방송의 존재 가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웨이브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 '키스 더 유니버스'는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 현실에선 여러모로 블록버스터 급이다. 그럼에도 송 PD는 "10년 전 BBC에서 글로벌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드는 제작비가 20억원이었던 데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토로했다. "국내 다큐멘터리도 더 많은 투자를 받아 글로벌 마켓으로도 진출, K다큐의 존재감을 떨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키스 더 유니버스'에서 다루지 못한 심우주를 향한 인류의 탐사 여정을 풀어내는 건 앞으로 그에게 남겨진 숙제다. "'키스 더 유니버스'가 우리 사회에서도 우주를 향한 도전과 개척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키스 더 유니버스'는 목요일 오후 10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 웨이브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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