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이름은 '퀵실버'. 두 살 된 암탉이었다. 개와 고양이가 주로 오는 우리 병원에 닭이 진료 예약을 잡으면서 병원은 술렁였다. "음… 정말 우리가 아는 그 닭이 온다는 거죠?"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식탁 위에서 만나던 '치킨'을 병원에서 환자로 만나는 것에 대해 당황한 것이리라. 필자에겐 두 번째 닭환자였다. 첫 닭 환자의 이름은 '삐요'. 윤기가 흐르는 벼슬이 인상적이던 삐요는 힘이 세고 무서운 친구였다. 몸을 잡아 채혈을 하려고 날개를 펴자 푸드덕 날아올라 필자의 정수리를 쪼았었다. 새록새록한 '웃픈' 기억을 떠올리며 삐요가 그 정도였는데, 퀵실버는 얼마나 무서울까 상상했었다.
퀵실버는 이름과 달리 너무나도 온순했다. 회색빛의 단정한 외모를 뽐내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일 모래목욕을 해서인지 진드기는커녕 피부병도 없이 깔끔했다. 동물을 교육시키는 학교에서 키워지는 닭인데, 학생들과 트레이닝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검사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아니 웬만한 개나 고양이보다도 협조적이었다. 닭의 지능을 비웃던 말들이 무색할 정도였다. 닭은 학습능력이 뛰어나다. 연구에 의하면 네 살 정도의 산술능력과 공감능력, 자기통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통은 물론 기대감이나 좌절, 배려 등의 감정도 느낀다.
퀵실버의 병명은 '탈장(hernia)'이었다. 장의 대부분이 항문 아래 근육 밖으로 나와 있었고, 수술적 교정이 필요했다. 마취가 까다롭다 보니 수술비는 비쌌다. 퀵실버는 운이 좋았다. 보호자는 수술을 결정했고 닭의 수술이 결정된 후 병원은 한 번 더 들썩였다. 세상에 닭 수술이라니!
닭의 마취는 전신마취로 시행된다. 마취 중 쇼크를 막기 위해 5분마다 환기가 필요했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수반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대부분의 개나 고양이를 마취 회복 시 이름을 부르거나 흔들어 깨우듯, 우리는 퀵실버의 몸을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렀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혹여 깨어나지 못할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잘 깨어난 퀵실버는 하루 동안 입원해 치료받았다. 병원 직원들은 입원한 닭 환자가 신기한지, 번갈아 문병을 빙자한 구경을 했다.
퀵실버의 퇴원 후 선생님들에겐 사소한 변화가 있었다. 치킨을 먹는 게 불편하다는 것. 퀵실버와 겹쳐 보인다며 다소 괴로워했다. 닭을 음식이 아닌 이름을 가진 '생명'으로 마주한 경험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그 미안함을 잊었지만, 수술실 팀원 몇 명은 여전히 치킨이 불편하다.
닭의 수명은 평균 10년 이상이다. 길게는 20년도 산다. 하지만 자연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닭의 운명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우리나라에서만 1년에 10억 마리 이상의 닭이 도축된다. 식용으로 키우는 육계의 경우 생후 35일이면 도축된다. 산란계도 생후 5개월부터 매일 알을 낳다가 두 살이 되기 전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도살된다. 퀵실버가 산란계였다면 벌써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심지어 산란계 수컷 병아리는 더 끔찍한 운명이다. 고기로도, 알을 낳는 기계로도 쓸모가 없어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려 찰나로 생을 마친다. 이런 닭들에게 삶은 정말 지옥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 만난 퀵실버는 영리하고 매력적인 환자였다. 사람에 따라 닭에게 어느 정도의 복지를 제공할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어차피 잡아먹힐 운명인 닭에게 복지가 웬 말이냐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생산성, 가성비 등을 이유로 복지를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식탁 위에 올라오기 전 살아있는 생명으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고기로 죽을 짧은 생일망정 닭답게 살다가 죽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결국 동물 복지는 사람의 복지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지금 퀵실버는 모래목욕을 마치고 횃대에 앉아 햇빛을 쬐며 있으려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나의 환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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