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참가국들 에너지 위기로 탄소중립 멈칫
환경운동가들 "이번 회의 성과 못낼 것" 우려
편집자주
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관련 이슈와 제도, 개념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셨죠? 에코백(Eco-Back)은 데일리 뉴스에서 꼼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뒷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코너입니다.
탄소중립. 최근 우리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과업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뒤 반년 만에 대통령 직속으로 탄소중립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위원회 출범 석 달 만에 '2050시나리오 초안'이 나왔습니다. 이후 수백 개가 넘는 각종 단체들과의 간담회 끝에 지난 18일에는 시나리오 최종안까지 내놨습니다. 지난 2월 유엔에서 퇴짜 맞았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도 2018년 대비 26.3%에서 40%로 대폭 높였습니다.
이 엄청난 속도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31일부터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참석, 전 세계를 향해 우리 한국의 탄소중립 계획을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의 2030 NDC를 공개하고, 12월 유럽연합(UN)에 공식 제출합니다. 우리 정부의 속도전은 이 일정에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COP26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대가 드높았던 올해 '글래스고 회의'
먼저 COP26은 세계 197개국 정상들이 파리협정 이행을 위해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인 1.5도로 제한하자는 협정입니다.
당초 이번 총회에 대한 관심은 드높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한 해 연기된 행사지만 그 기간 동안 호주에서는 대형산불이, 유럽에는 대홍수가 발생했습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각국 사정과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환경 이슈에 대해 어느 때보다 전향적인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꽤 달라졌습니다. 알록 샤르마 COP26 의장마저 "이번 회의에서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게 2015년 파리협약 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압박용 엄살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샤르마 의장 발언의 배경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전력난 사태 겪은 중국 등 주요국 불참
하나는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 수장들의 불참입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선 무엇보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는 국가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그런데 '친화석연료' 국가라 꼽히는 국가들이 불참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중국과 러시아의 두 정상이 최근 글래스고 회의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중국의 경우 2016년 기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3.1%를 차지합니다. 러시아도 3.78%에 달합니다. 주요 석탄 수출국 중 하나인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불참하려다가 국제 사회의 거센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기로 했으니 그나마 나은 편일까요. 세계 배출량의 5%를 차지하는 인도의 경우,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참석은 합니다만, 탄소중립에 아주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배출국 수장들의 잇따른 불참선언에는 최근 불거진 에너지 대란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중국의 경우, 지난달 중순부터 31개 성·시·자치구 중 무려 20여 곳이 전력난으로 인해 공장을 제대로 돌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중국이 탄소중립에 소극적 태도로 돌변했고, 심지어 이번 글래스고 회의 불참이 탄소중립 이행 거부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대안으로 꼽히는 신재생에너지도 휘청
이런 현상은 꼭 중국 같은 나라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간 탄소중립을 강조하던 서구 선진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래스고 회의의 의장국인 영국이 대표적입니다. 영국은 지난해 기준 풍력 발전 비중이 24.8%에 달했는데 올 여름 이상기후로 북해에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전력을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천연가스를 더 수입하면서 전기료가 폭등하고, 그 때문에 원자력 발전에 대한 신규 투자까지 결정했습니다.
원자력만이 아닙니다. 석탄화력에 대한 경계도 슬쩍 늦춰지는 분위기입니다. 심지어 미국은 올해 석탄화력발전량을 전년 대비 22%나 늘렸습니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전환했습니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했던 트럼프도 아니고 탄소중립을 그토록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왜일까요. 연초 텍사스주 한파, 유럽의 가스 가격 급등이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상대적으로 석탄의 경쟁력이 높아진 데 따른 현상입니다. 에너지 위기 때문에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느니 차라리 석탄화력발전을 가동하자는 것이지요.
툰베리 "주요 국가들 말만 앞세우는 기만적 행태"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2021년도 생산격차 보고서'를 보면 중국,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주요 탄소 배출국 15개국이 향후 20년간 생산할 화석연료는 지구 온난화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는 데 필요한 양의 110%에 달한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지금보다 훨씬 더 줄여 나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논의를 주도해 나가야 할 국가들의 사정은 이렇게 제각각입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이번 글래스고 회의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영국, 중국 등이 행동 없이 말만 앞세우는 기만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질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단호한 대응에는 모두가 필요성을 공감합니다. 하지막 각국의 속내는 조금씩 다릅니다. 이번 글래스고 회의는 제대로 된 결과를 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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