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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이를 기리는 장송곡

입력
2021.10.28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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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회> '애도의 노래' B♭ 단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애도의 노래' B♭ 단조

'애도의 노래' B♭ 단조

반음 내려간 시(B)가 으뜸음인 B♭ 단조는 추모의 성격이 짙다. 유독 이 조성으로 만들어진 음악들은 영원한 작별의 시간과 어울리곤 했다.

영화 '플래툰'에서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 일라이어스(윌렘 대포)가 총탄에 맞아 숨지는 장면.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며 전쟁에 따른 희생을 묘사한다. 이언픽쳐스 제공

영화 '플래툰'에서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 일라이어스(윌렘 대포)가 총탄에 맞아 숨지는 장면.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며 전쟁에 따른 희생을 묘사한다. 이언픽쳐스 제공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두 팔을 하늘로 올리고 무릎을 꿇은 채 죽어가는 군인의 초상으로 유명한 고전영화가 있다. 베트남전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그린 '플래툰(1986)'이다. 이 영화의 대표 주제곡 중 하나는 미국 작곡가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다. 참혹한 전장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군인 일라이어스(윌렘 대포 분)가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순간에도 흐르는 이 음악은 전쟁 희생자를 위한 레퀴엠으로 기능한다.

장재진 기자(장): '화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작곡가 라모는 B♭ 단조를 두고 "애도의 노래"라고 했다. 실제로 이 조성으로 쓰인 바버의 아다지오는 아인슈타인과 존 F.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등 명사들의 추도식에서 연주되곤 했다. 10분 남짓 짧은 현악곡이지만 조금만 들어도 금세 숙연해진다.

: 6년 전 쇼팽 콩쿠르에 출전했던 조성진은 본선 2차에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B♭ 단조)을 연주했다. 피아노 레퍼토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곡에는 '장송 행진곡'이라는 부제가 있다. 작곡가는 생전 자신의 곡에 고정된 이미지를 부여하는 일을 경계했지만, 소나타 2번만큼은 스스로 정체성을 담았다. 쓸쓸한 3악장이 특히 유명한 이 곡은 유럽의 많은 장례식장에서 연주되고 있다.

: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관현악곡 '슬라브 행진곡'도 B♭ 단조의 작품 중 하나다. 1876년 작곡가는 러시아음악협회로부터 세르비아-투르크(터키) 전쟁 희생자를 위로하고, 세르비아의 승리를 기념하는 곡을 의뢰받았다. '슬라브 행진곡'은 그런 배경에서 쓰였는데, 이 때문에 곡 초반에는 전쟁의 고통을 상징하는 듯한 무거운 선율이 세르비아 민요를 바탕으로 흘러나온다.

: 차이코프스키가 '슬라브 행진곡'을 쓰기 꼭 2년 전. 그는 불멸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바로 협주곡 1번(B♭ 단조)이다. 원래 차이코프스키가 몸담았던 모스크바음악원의 원장이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당사자로부터 혹평을 받고 작곡가가 격분한 일화가 유명하다.

: 하지만 오늘날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위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제32회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소속 선수들이 메달을 땄을 때 러시아 국가를 대신해 경기장에 울려 퍼진 음악이기도 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 탓에 러시아가 국가 자격으로 대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시상식 때 국가 연주도 금지되자, 대안으로 택한 곡이었다. 러시아인에게 차이코프스키와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5월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수연이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장윤성 지휘)와 다음 달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다.

지중배 지휘자.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지중배 지휘자.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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