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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열매, 말의 씨

입력
2021.10.27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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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말에 대한 격언은 세상 어디에나 내려오는 깊은 유산이다. 인류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말은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래서 잠언의 다음 구절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18:21)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의 결과를 자신이 취하게 된다는 다소 아찔한 가르침이다.

이에 대한 분석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자기 말의 인과(因果)에 속박되리라는 것은 거의 과학에 가깝다. 우리네 속담도 '말은 씨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영국의 속담도 경솔한 언행을 경고한다. '지혜는 듣는 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 위 잠언에 따르면 후회 정도가 아니다. 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죽고 사는 것마저 달렸다.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듯, 잠언은 사람이 혀의 열매를 먹는다는 표현을 한 번만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18:20)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격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열매 맺는 말을 하여 좋은 것을 넉넉하게 얻으며, 자기가 손수 일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고도 잠언은 전한다(12:14).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속담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한다. 사람의 훌륭한 언사에 대하여 잠언은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이고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고 한다(25:11; 16:24). 말을 센스 있고 아름답게 하는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 없다. 그런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15:23)

인류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이니 턱없을 리 없겠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에 회자하는 사건 사고들만 보아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수천 년 전의 잠언 구절들이 지금에 이르러 더 돋보이는 것은, 정말로 사람이 자기 혀의 열매 먹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 열매 안에 과즙이 있기도 독이 있기도 하다.

지금은 말을 그저 속삭여도 굉음이 되어 버린다. 2~3초간 한 말이 녹음되고 방송되면 전 세계에 수천 시간 재생된다. 더군다나 SNS를 통해 단 한 번이라도 노출했다간 영원불멸의 메아리가 되어 삭제 불가능이다. 결국 자기가 먹게 될 그 혀의 열매는 폭탄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입을 조심하는 사람은 지혜가 있다."(10:19)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그러나 조심성 없이 말을 하면 결국 자기가 먹게 될 독 사과가 된다. 농담이 아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가 전해주는 산 경험의 경고고, 하나님의 신성한 경전이 계시하는 진리이다.

아무 말 잔치가 판을 치는 요사이, 우리의 지친 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위로한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26:20) 첨단 기술로 인해 사람의 말이 시공간을 넘어 천방지축 뛰놀고 다니니, 듣는 우리의 마음도 참 번잡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거품이 좀 빠지면 다 밝혀진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12:19).

하나 더 생각해보자. 말은 대개 남에게 향한다. 우리 격언에 '화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고 한다. 아마 다들 한두 번쯤은 이런 진땀 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 속담에서 화살과 말을 같은 속성에 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요새 인터넷 뉴스 사이트는 댓글 기능을 막아 놓기도 한다. 내뱉어서 수습하기 어려운 말이 정말로 사람의 심장을 찔러 정지시키는 화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역사도 말은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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