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일본원숭이 연구가 보여준 통찰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몇 년째 글쓰기 선생 일을 하며 지낸다. 원고료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서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지구상에 이런 직업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글쓰기를 통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둘러싼 껍데기가 아닌 내면과 직접 만나게 된다. 그 점이 좋아서 글쓰기 가르치는 일을 계속한다.
나는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처럼 사람들이 털어놓는 내밀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홀로 읽으며 겪어본 적 없던 여러 개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사람들에게는 비밀을 꽁꽁 숨겨두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이것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것 같다.
나이가 오십, 육십이 된 남성 어른도 어떤 장면 앞에서는 순식간에 어린아이가 되어 운다. 근원적인 고통과 두려움, 서러움을 자극하는 장면들이다. 가짜로 이루어진 글이 아니라 진짜로 이루어진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많은 경우 사람들이 처음으로 쓰는 것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다.
아무래도 가족과 관련한 일이 대부분이다. 때리는 아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 방치된 아이, 가난과 수치심, 성폭력과 누적된 분노,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이고 화목하지만 교묘하고도 섬세하게 망가진 가족 간 관계, 이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없었던 상황들. 각자에겐 최초의 증언이지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나 유사한데, 들어도 들어도 절대 지겨워지지 않고 매번 새롭게 아프다.
아픔을 순응하는 자와 멈추는 자
그러다가 종종 경이로운 순간이 있다. 사람들이 글을 쓰다가, 울면서 쓰다가, 어느 순간 울음을 멈춘다. 살던 방식을 미묘하게 바꾼다. 더 이상 가족에, 그 사람에, 그 기억에 의해 상처받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이 같은 변화는 대단히 결정적인데, 하루아침에 일어나기보다는 꽤 긴 기간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두 마음이 치열하게 싸운다. 살던 대로 순응하며 살며 변화를 겪고 싶지 않은 마음과 폭력과 가해를 대물림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조금씩 바꿔보려는 마음.
작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분명히 느껴지는 글을 만날 때마다 두 가지를 배운다. 첫째,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으로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랐어도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을 반복하지 않는다. 자기 대에서 끊는다. 상처를 지우기보단 자기와 통합하여,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고 부모와 다른 삶을 산다. 그러기 위해 문자 그대로 죽도록 애쓴다. 그들을 보며 어떤 환경도 누군가를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운다.
둘째로, 바로 첫 번째 사람들 덕분에 가해자의 책임은 그가 얼마나 기구한 서사를 가졌든 결국 가해를 행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똑같이 불우한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다른 선택을 내렸다. 선한 길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해자의 서사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원숭이 연구자의 선택
지금까지 '젠더살롱'에는 여성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비판적으로 살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과학을 해야 된다는 말이냐? 과학기술학을 해왔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성찰하면, 비판하는 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하나의 예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23일 교토대학교 영장류학·야생동물계 박사과정 이보윤 연구원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교토대학교 영장류연구소에서 야쿠시마 일본원숭이(학명 Macaca fuscata yakui), 그중에서도 일본원숭이 신생아의 발달 과정을 연구한다.
같은 영장류학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어떤 학자는 원숭이의 목에 위성항법장치(GPS)를 부착해 연구하고, 어떤 학자는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는 실험을 고안하여 그 안에 원숭이가 처하게 만들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하고, 어떤 학자는 원숭이의 뇌를 열어서 전극 등을 꼽아 연구한다. 이 경우 실험이 끝나면 원숭이는 다시 실험 대상으로 쓰일 수 없어 안락사 된다. 이렇게 실험 목적으로 길러지다 죽은 원숭이를 기리기 위해 교토대 영장류연구소는 1974년 이래로 매년 원숭이 위령제를 열고 있다.
이보윤 연구원이 영장류학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택한 방법은 관찰이다.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삶을 조용히 관찰하는 것. 전기 장치를 부착하거나 실험 연구를 하는 것보다는 느리고 한계도 있지만 원숭이를 알기 위해 원숭이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더 낫고 자신에게 편안하다고 했다.
나는 이처럼 연구 방법론에서부터 기존 학계의 방식에 의구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덜 폭력적이고, 더 포용적인 방법을 택한 여성 과학자들을 과학의 역사에서 자주 발견한다.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
모성애 시각에 갇혀 있던 원숭이 양육
인간의 아기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모성애가 얼마나 중요하고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는 연구는 무수히 많다. 이 같은 연구는 반대로 정신질환, 비사회적 행동, 유아 사망, 청소년 범죄 등 대단힌 많은 것들의 원인으로 '잘못된' 모성애를 지적하기도 한다.(8월 7일자 '부족한 엄마의 사랑'이 아니라 '나쁜 사회' 탓이다 참고)
모성애 신화를 강화하는 시각은 영장류학에도 반영되어 왔다. 어미와 새끼를 떨어뜨려 놓았을 때 새끼가 얼마나 불안하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들, 혹은 어미와 함께 자란 새끼와 그렇지 않은 새끼들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대표적이다(Suomi, S. J., 1997; 1999). 이러한 연구들은 결국 엄마가 새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성애가 없다면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함축하고 있다.
모계사회를 이루어 사는 일본원숭이 연구 역시 어미가 새끼에게 큰 영향을 주고 새끼는 어미의 사회적인 관계를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Maestripieri, D., 2018). 일본원숭이 같은 안정적인 위계관계를 가지는 종의 경우, 어미가 다른 개체에게 새끼를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곧, 어미가 새끼와 다른 개체의 상호작용을 제한한다는 이야기다(Chism, J., 2000).
이보윤 연구원은 그간 어미가 새끼에게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많았지만, 새끼가 어떻게 주체성을 가지고 행동하는지를 보는 연구는 많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일본 야쿠시마 섬에서 1년 반가량 새끼 원숭이들을 따라다니며 성장 과정을 추적 관찰한 결과는 기존 연구들을 통해 본 새끼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엄마 품 밖에서 자라는 새끼 원숭이
새끼 원숭이는 태어나자마자 첫날부터 어미에게서 빠져나와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외부 세계에 관심을 보인다. 며칠이 지나 새끼를 출산한 어미들끼리 모이면, 다른 어미에게 가서 새끼는 빤히 쳐다보기도, 만지기도, 슬쩍 몸을 기대기도 한다. 어미가 아닌 다른 존재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새끼가 다른 원숭이에게 다가가 만지면 원숭이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반응을 보여준다. 흠칫 놀라기도, 점점 익숙해져서 만지기도, 그루밍을 하기도, 핸들링을 하기도 하고, (일본원숭이에게 실례되는 발언일 수 있지만) '유괴'를 하기도 한다! 어미의 관심을 피해 새끼를 멀리 데리고 나가 놀다 오는 것이다.
새끼 역시 다른 원숭이에 의해 수동적으로 맡겨지지만은 않고 마음에 드는 상대에는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빠져나가거나 우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이보윤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어미의 영향력에만 주목해 와서 새끼의 주체적인 선택들을 제대로 관찰해오지 않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본원숭이 새끼의 생애 초반, 이들은 생각보다 어미와 가까운 친족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새끼를 낳은 엄마들끼리 모이는 공동체에서 지내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만난 자기 또래의 새끼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보윤 연구원은 아이들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게 왜 중요할까요? 물으니 이렇게 답해 주었다. "새끼가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게 알려지게 되면 관계가 대물림된다 하더라도 아이가 성장과정에서 대물림받기까지 어떤 경험들을 축적해오는가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엄마 품 밖에서 얻은 경험들이 아이가 성장한 뒤의 삶을 이해하는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보윤 연구원 역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연구하는 삶을 택했다. 본격적으로 일본원숭이 연구에 뛰어들기 전 발달과 양육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연구를 접하고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책 '양육 가설'에서 해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 당신은 아이를 완벽하게 만들 수도 망칠 수도 없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가임기 여성으로서도, 자식의 입장에서도 숨통이 트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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