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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왜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냈나

입력
2021.10.30 1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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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웨이브 '몸을 긋는 소녀'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몸을 긋는 소녀'는 길리언 플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치밀한 심리극이다. IMDb 제공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몸을 긋는 소녀'는 길리언 플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치밀한 심리극이다. IMDb 제공

신문기자인 카밀 프리커는 편집장의 지시로, 고향인 시골 마을 윈드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취재하러 간다. 얼마 전 앤 내쉬가 살해당한 채 발견됐고, 지금은 나탈리 킨이 실종된 상태다. 둘 다 10대의 소녀다. 마을 사람들은 앤의 아버지인 밥과 나탈리의 오빠인 존을 의심하고 있다. 12년 만에 돌아가는 윈드갭에는 카밀의 어머니 아도라, 새아버지 알렌, 이부동생인 엠마가 있다. 윈드갭의 경찰서장은 카밀을 반기지 않고, 카밀을 대하는 어머니의 반응도 어딘가 수상하다.

장 마크 발레가 연출한 시리즈 '몸을 긋는 소녀'의 원작은 길리언 플린이 2006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다. 길리언 플린은 데이빗 핀처의 영화로 대성공을 거둔 '나를 찾아줘'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완벽한 여성으로 보였던 주인공의 마음을 깊게 파고들어 전율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한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타고난 성격, 자라난 환경, 개인의 의지와 선택 등이 어우러져 인격이 형성된다고 하는데, 한 인간의 내면을 타인이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끔찍한 범죄를 일으키는 인간의 마음을 평범한 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범죄자와 다른 '평범'이라는 가치는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신문기자인 카밀은 실종된 두 소녀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12년 만에 고향 윈드갭으로 향한다. IMDb 제공

신문기자인 카밀은 실종된 두 소녀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12년 만에 고향 윈드갭으로 향한다. IMDb 제공

'몸을 긋는 소녀'의 제목은 카밀에게서 왔다. 카밀은 알콜 중독이다. 늘 보드카를 에비앙 생수병에 넣어서 마시고 있다. 밤에 잠이 안 오면, 바에 가서 술을 마신다. 복장은 언제나 검은 진에 검은 긴팔 티셔츠다. 이유가 있다. 그녀의 팔과 다리, 온몸에는 흉터가 있다. 날카로운 것으로 자해를 한 흔적. 욕조에 누워 드러나는 팔에 'vanish'라고 쓰여 있다. 환상인가 했다. 카밀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은유 같은 것. 하지만 아니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자신의 몸에 분노, 절망, 자기 환멸의 단어들을 새겨 넣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지 않아. 이미 피부 아래 상처가 있으니까 그걸 꺼내는 거야."

편집장은 카밀을 아끼기에, 그를 고향으로 보냈다. 과거의 상처에 직면하고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너는 좋은 작가이자 기자야. 그러나 일단 자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해." 카밀은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윈드갭을 떠날 만큼 영리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관습이 지배하는 미국 남부 시골 마을의 억압과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카밀의 동생 마리안은 살해당했다. 친구와 손목을 긋고 동반 자살했다고 하지만, 현장에는 칼이 없었다. 아도라는 윈드갭의 지배자다. 아도라의 조상은 윈드갭을 세운 사람이고, 아도라는 돼지 도축장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다. 돈과 권력, 명예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식들 역시 지배하기를 원한다. 카밀은 저항했고, 몸에 자해를 했고, 결국 세인트루이스로 도망쳤다.


고향으로 돌아온 카밀은 다시 만난 어머니 아도라와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HBO 제공

고향으로 돌아온 카밀은 다시 만난 어머니 아도라와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HBO 제공

12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도라는 건재하고, 윈드갭은 여전하다. 마을 사람들은 카밀 앞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돌아서면 험담을 하고, 그들끼리 비밀을 주고받는다. 경찰서장은 범인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 멕시코 트럭 운전사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캔자스시티에서 파견된 형사 리처드 윌리스는 말한다. "마을 사람 다들 살짝 미쳤거나 악마"라고. 물론 반만 진실이다. 윈드갭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그러니까.

가장 변하지 않은 것은 아도라다. 카밀은 윈드갭에 온 날부터 아도라와 부딪친다. 분명히 과거의 이유가 있다. 대체 그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몸을 긋는 소녀'는 정공법으로 과거를 말해주지 않는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과거의 기억들을 매순간마다 자유롭게 끼워 넣는다. 지금도 그 순간들이 카밀을 지배하고 있다는 듯이. 카밀이 마리안의 방을 보면 과거의 한순간이 바로 재생된다. 잊은 것 같았던 기억들이,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처럼 카밀의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온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함께, 카밀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공유하고 있다. '몸을 긋는 소녀'는 시간을 넘나들며 과거를 보여주는 대신, 지금 이 순간 카밀의 육체와 감정을 통해서 과거의 사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절실하고, 너무나 고통스럽다. 카밀이 자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절망과 혐오의 감정이 지금 넘쳐나고 있으니까.


자신의 몸을 그어 스스로 상처를 낼 만큼 무서운 비밀을 고향에 숨겨 놓은 카밀은 그 고통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IMDb 제공

자신의 몸을 그어 스스로 상처를 낼 만큼 무서운 비밀을 고향에 숨겨 놓은 카밀은 그 고통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IMDb 제공

장 마크 발레의 전작으로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와일드', '데몰리션' 등이 있다. 에이즈에 걸린 것을 알게 된 남자가 미국에서 금지된 약을 밀수하여 감염자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한다.('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삶의 희망이었던 어머니가 죽자, 치유와 희망을 위해 수천 킬로미터의 험난한 트래킹 코스를 걷는다.('와일드') 사고로 아내가 죽은 후, 괴멸해버린 삶을 재건하기 위해 발버둥친다.('데몰리션') 장 마크 발레의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은 삶의 동력을 잃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다. 견고하다 믿었던 일상과 희망이 박살 났고, 다시 살아가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장 마크 발레는 재생을 위해 필요한 혼돈과 슬픔, 고통의 순간을 처절하지만 황홀하게 보여준다. 그들을 보는 것은 아프지만, 응원하고 싶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의 한걸음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들 스스로 먼 길을 걸어, 흩어진 것을 다시 모아,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니까.

'몸을 긋는 소녀'의 카밀도 삶의 기로에 있다. "나는 어른이 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카밀의 말은 농담도, 자학도 아니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느끼는 그대로 진술한 것이다. 카밀은 강하지 않다. 참담한 과거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술에 의존하고, 자해를 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끝내야 한다. 과거와 현재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신이 본 것을 냉정하게 기사로 써야 한다. 자의건 타의건 픽션은 용납되지 않는다.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팩트를 모으고, 자신은 물론 독자가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논리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몸에 새긴 자신의 역사를 이제는 세상에 내보여야만 한다.


'몸을 긋는 소녀' 포스터. 웨이브 제공

'몸을 긋는 소녀' 포스터. 웨이브 제공

카밀을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는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 데이비드 O. 러셀의 '아메리칸 허슬',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전형적인 금발 미녀 같으면서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정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 '몸을 긋는 소녀'는 에이미 아담스의 절망적인 연기가 더해지면서 더욱 절실하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카밀의 과거에는 분명 상상 이상의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패트리시아 클락슨이 연기하는 아도라는, 카밀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사랑할 줄 알았어. 그럼 우리 엄마도 나를 사랑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들은 모두 사랑을 갈구하며 지배하고, 억압한다. 학대를 당한 아이는 다시 사랑을 호소하며 자해를 하거나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폭력의 연쇄는 스스로 멈추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다.

결국 카밀이 선택한 것은 진실 그리고 친절함이었다. 그것만이 카밀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그러나 현실은 친절함만으로 구원되지 않는다. 최후의 반전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 '몸을 긋는 소녀'는 마지막까지 참담하고 서늘하게, 막막한 현실을 고발한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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