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1일
김우중 회장과 12개 계열사 사장단 일괄 사표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99년 11월 1일, 당시 대한민국 4대 재벌 중 하나인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과 12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계열사 사장 13명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세계경영의 성공 신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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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회장은 1967년 32세에 서울 충무로에서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해 대우그룹을 재계 자산 순위 2위, 매출액 4위까지 올려놓았다. 대우는 70년대 다른 대기업들이 진출하기 꺼려 했던 동유럽과 베트남 등 해외사업에 큰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주력 사업이던 대우차는 폴란드, 루마니아, 인도, 중앙아시아 등에 사업을 확대하며 세계 10대 자동차업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자동차를 비롯해 건설, 조선, 증권, 전자 등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던 대우그룹은 97년 말 한국을 강타한 금융위기 속에서도 쌍용차를 인수하는 등 공격 경영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1인 지배체제의 불안정성은 대우그룹을 IMF사태가 몰고 온 새로운 기업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붙들며 침몰로 몰고 갔다.
차입경영을 해오던 대우는 99년 3월 그룹의 부채 비율이 400%를 넘어섰고, 자기자본비율은 50% 이하로 떨어진 가운데 IMF사태가 초래한 연 30% 가까운 금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같은 해 7월 채권은행단은 만기가 도래한 70억 달러의 부채 상환을 연기했으며 8월에는 대우그룹에 대한 워크아웃을 결정했다. 11월 1일 채권단의 요구로 인해 김 회장과 사장단이 총 사퇴를 하고, 대우그룹은 이듬해인 2000년 4월 15일 공식 해체됐다.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해 5년 8개월 간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05년 입국해 징역 8년 6개월, 추징금 약 18조 원을 선고받게 된다. 이후 김 전 회장은 2007년 12월 31일 대통령 특사로 사면 받고, 2019년 12월 9일 향년 83세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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