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MBTI가 혈액형 성격설의 확장판이라던데 혈액형별 성격은 안 믿으세요?"
성격 유형 검사인 MBTI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기억에 남는 질문을 들었다. MBTI는 인식과 판단에 대한 문항들을 통해 피검자를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 물론 사람의 특성은 단순한 패턴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어느 한 유형의 특징에 과몰입하는 태도는 좋지 않지만, 검사를 통해 자신의 특성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갈 수 있다. 예컨대 사고형(T) 판단 기능이 우세한 사람은 이성적인 사고에 근거해 상황을 판단하는 성향임을 이해하고, 이성적 판단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소통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
자기 보고식으로 스스로의 성격을 답하는 MBTI 검사와 달리 혈액형별 성격 유형은 아무런 자료나 근거가 없다.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에 있는 항원에 따라서 혈액을 분류하는 방식이다. 항원이란 체내에서 특이적인 면역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을 뜻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적혈구 표면의 항원은 정상적인 내 몸속에서 반응을 일으키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체내로 들어가면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때 항원의 구조를 특이적으로 인식하여 응집시키거나 용혈시키는 당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항체라 한다.
적혈구 표면에는 다양한 종류의 항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의 혈액형은 수백 가지로 조합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적혈구 항원들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능력이 약하기에 수혈을 할 때는 면역 반응이 강한 ABO식 항원과 Rh식 항원만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ABO식 혈액형을 나타내는 항원은 단당류가 여러 개 결합한 당사슬을 기본 구조로 가진다. 적혈구에 기본 당사슬만 있는 혈액을 O형으로 분류하며, 기본 당사슬의 끝에 N-아세틸갈락토사민이라는 변형된 당이 결합되어 있으면 A형, D-갈락토오스라는 당이 결합되어 있으면 B형으로 분류한다. 하나의 적혈구에 두 종류의 당사슬이 모두 있다면 AB형 혈액이다.
이렇듯 혈액형마다 항원이 다르기에 ABO식 혈액형을 고려하지 않고 수혈하면 항원 항체 반응에 의해 적혈구가 응집하거나 용혈되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A형 혈액에는 B형 항원을 공격할 수 있는 항체(항B 항체)가 존재하고, B형 혈액에는 A형 항원을 공격하는 항체(항A 항체)가 존재한다. 기본 당사슬만 있는 O형 혈액에는 항A 항체와 항B 항체가 모두 들어있다. AB형 혈액에는 항A 항체나 항B 항체는 없지만 항원이 있기 때문에 다른 혈액형이 가지고 있는 항체와 결합하면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일반적인 경우 생명체가 어떤 항원에 노출된 후에 면역 반응이 유발되어 그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혈액형의 적혈구를 수혈받은 적이 없는데도 이미 ABO식 항원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무균실에서 기른 병아리에는 항B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미생물의 항원에 노출되어 항A 항체와 항B 항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니 혈액형은 병아리에서도 작용하는 면역 반응의 항원 유형일 뿐이다. 소심하다거나 바람둥이라는 성격 유형들은 적혈구 표면의 당사슬을 만드는 과정과 관련이 없다. 어떤 성격에 대해서든 나 자신과 주변인에 대해 확증편향을 가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자세는 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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