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찰스 반 도렌
뉴스의 사실 왜곡과 다큐멘터리 조작의 바탕에는 제어되지 못한 욕망이 있을 것이다. 열독률·시청률의 욕망, 작성·제작의 편의, 더 강한 자극의 관성… 왜곡의 효과는 선명하고 즉각적이지만, 진실의 효과는 대개 더디고 흐릿하다는 점도 큰 유혹일 것이다.
왜곡과 불신, '가짜뉴스'란 말이 대변하는 미디어와 대중의 역설적 괴리는 진영 갈등을 양산하고 심화한다. '기레기'란 말로 부분을 전체로 일반화하는 소비자와 왜곡, 조작을 일삼는 '기레기'는 각자 진영에서 적대적으로 공생하며, 바이러스처럼 공동체 윤리와 민주주의의 토대를 훼손한다.
의회 청문회까지 이어진 미국 방송 NBC 퀴즈쇼 'Twenty-One' 조작 스캔들이 1950년대 중후반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문항 난이도에 따라 1~12점이 부여된 퀴즈를 풀어 21점을 먼저 딴 사람이 우승 상금을 획득하는 게 룰이었다. 제작자와 프로듀서는 지지부진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스타성 있는 출연자를 섭외해 그에게 미리 문제와 답을 알려준 뒤 승리하게 했다.
1957년 1월 컬럼비아대 영문학 강사 출신의 찰스 반 도렌(Charles Van Doren, 1926~2019)이 그렇게, 6주 연속 우승자인 뉴욕 교통국 공무원을 누르고 퀴즈왕이 됐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 시인 겸 비평가 마크(반 도렌)의 아들이자, 역시 퓰리처상 전기작가 칼의 조카인 그는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에 교양과 품위를 갖춘 인물이었다. 3월 초 한 변호사에게 패배할 때까지 그는 연승하며, 거액의 상금과 함께 타임 표지를 장식할 만큼 유명해졌다.
조작 의혹이 제기되며 파장이 일자 마침내 의회가 개입했고, 한사코 청문회 출석을 회피하던 그는 한 달여 만인 1959년 11월 2일 의회에서 자백했다. 미국 시민들은 그렇게, 진실을 둘러싼 미디어의 스캔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새삼 확인했다.
반 도렌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자(1959~82)로 일하며 한국어로도 번역된 '지식의 역사' 등 책을 출간했고, 말년에야 교단에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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