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희 대표, 피부 분석 AI와 화장품 제조로봇 개발
"지방과 여성 창업가에 대한 편견 깰 것"
사람들마다 피부가 다른데 같은 화장품을 사용하면 효과가 있을까. 그 이전에 사람들은 각자의 피부 상태를 알 수 있을까. 설령 각자의 피부 상태를 알아도 조제약처럼 개인별 맞춤 화장품을 구할 방법이 없다. 이를 해결할 길이 없을까.
신생기업(스타트업) 릴리커버를 만든 안선희(43) 대표는 이런 의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로봇과 인공지능(AI)이다. 그가 개발한 맞춤형 화장품 제조 로봇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아 수출까지 되고 있다.
이동통신 장비와 의료기기 개발한 프로그래머 출신
"화장품 회사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예요. AI가 빅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죠."
안 대표는 회사의 정체성을 IT기업이라고 정의했다. 우선 그부터 금오공대와 충남대 대학원에서 화장품과 거리가 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아버지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서울에 가지 못하게 했어요."
다행히 대학교 4학년 1학기때인 2001년 LG전자 공채에 합격해 안양 연구소에서 이동통신용 장비를 개발했다. "대기업은 급여나 복지 등 여러모로 너무 좋았죠. 하지만 여기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그는 고민 해결을 위해 4년간 근무한 LG전자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녔다. 이후 그가 택한 곳은 경북대 병원이다. "대학병원에서 11년 동안 소프트웨어를 접목한 의료기기 개발과 임상시험을 담당했어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함께 화상치료용 의료기기를 개발했죠."
그는 화상치료용 의료기기를 개발하며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들을 만나 피부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때 화상 환자들을 만나며 피부 건강이 자신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죠."
휴대용 피부 분석기와 즉석 화장품 제조로봇 개발
안 대표는 2016년 대구에서 릴리커버를 창업하고 2018년 피부 분석기 '뮬리'를 개발했다. 손바닥 크기의 휴대용 피부 분석기 뮬리는 이마, 코, 뺨, 턱, 눈 근처 등 다섯 군데에 차례로 대고 버튼을 누르면 피부 상태를 측정한다. 이렇게 측정한 자료는 뮬리와 연결된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에서 암호화를 거쳐 릴리커버의 클라우드 서버로 자동 전송된다. 이를 안 대표가 개발해 특허를 낸 빅데이터 분석용 AI에서 분석한다. "몇 초면 분석 결과가 나와요. 한국 미국 일본 베트남의 피부과 전문의들 동의를 받아 인종과 나이, 성별로 수집한 모공, 주름, 홍조 등 11만 건의 피부 빅데이터를 토대로 AI가 분석해 40가지 피부 유형을 찾아내죠."
뮬리는 릴리커버 닷컴이라는 웹사이트에서 구입하거나 빌리면 된다. 가격은 구입시 39만원, 빌리면 1회당 2만6,000원이다. 대여용은 2~4주 사용하고 반납하면 된다. "피부 분석기를 만들면 잘 팔릴 줄 알았는데 그것으로 부족했어요. 피부 상태를 알아도 거기 맞는 화장품이 없으면 소용이 없죠. 그래서 화장품 개발까지 하게 됐어요."
그가 찾은 해법은 피부 균형을 맞춰준다는 뜻에서 '밸런스'라는 상표를 붙인 맞춤형 화장품이다. "여성들은 매달 한 번씩 호르몬 변화가 있고 음식이나 음주, 운동 등 생활습관에 따라 피부가 계속 변해요. 그래서 매번 달라지는 피부 상태에 따라 적절한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한꺼번에 수 만개 제품을 만드는 기존 화장품 회사들은 개인별 맞춤 화장품을 만들어 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 대표는 지난해 10월 다품종 소량 생산용 화장품 로봇 '에니마'를 만들었다. "2019년 2월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 참가했는데 당시 성윤모 산업통상산업부 장관께서 전시된 뮬리를 보고 로봇 개발에 대한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ETRI와 약 2년간 에니마를 개발했죠."
특허를 받은 맞춤 화장품 로봇 에니마는 에센스와 로션 등 두 가지 종류의 화장품을 즉석에서 만든다. 종류는 두 가지이지만 개인별 피부 상태에 맞는 성분 배합이 달라져 2만5,000가지 제품이 나온다. 그것도 제품 하나당 4분 이내에 제조가 끝난다. "박사급 연구원이 수작업으로 성분을 배합해 화장품을 만드는데 40분 정도 걸려요. 로봇은 그것보다 몇 배 빠르죠."
화장품 원료는 국내 대표 화장품 소재업체 한국콜마와 공동개발했다. "모공 축소, 주름과 홍조 개선, 유분 및 수분 균형, 미백 등 8가지 효능에 초점을 맞춰 유효 성분을 개발했어요. 로봇이 이 성분들을 배합해 화장품을 만들죠."
2주 가량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의 화장품 가격은 2만3,000원이다. "현재 피부 상태에 맞춰 제조한 화장품이어서 유효 기간을 2주로 정했어요. 2주 뒤 뮬리로 다시 피부를 분석해 새로운 화장품을 주문하거나 앱으로 제품의 QR코드를 찍어 보내 기존 제품을 다시 구매할 수 있죠."
로봇이 만드는 화장품 종류는 더 늘어난다. "곧 토너와 탈모를 줄여주는 샴푸, 머리에 뿌리는 에센스 제조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에요. 그러면 총 5가지 제품을 하나의 로봇이 만들 수 있죠."
이용자 이름 각인된 세상에 유일한 맞춤 화장품 배달
안 대표는 피부 분석기, 화장품 제조로봇, '4주의 당부'라는 피부관리 앱을 하나로 묶어 상품화 했다. 4주의 당부 앱은 이용자마다 피부 전문가를 1 대 1로 연결해 피부 상태에 맞는 관리 방법을 알려준다. "98명의 전문가는 전국 피부관리 전문점 원장들이예요. 화장품 고르는 요령부터 집에서 피부 관리하는 방법 등을 전문가들이 앱으로 알려줘요."
즉 뮬리로 피부 상태를 분석하면 2주마다 로봇이 여기 맞는 개인별 맞춤 화장품을 제조해 다음날 집으로 배달해 주고 앱으로 전문가와 상담하며 관리를 받는 구독형 서비스다. "주문한 화장품 용기에 이용자 이름을 명기해서 보내요. 세상에 유일한 화장품이어서 이용자들이 신기해 하며 감동 받았다는 후기를 인터넷에 올려 입소문을 많이 탔어요."
현재 이용자는 1,200명이다. "월 250명 이상이 맞춤 화장품을 주문하죠. 한 번 구입하면 다시 찾는 재구매율이 48%예요. 남성 이용자들도 꽤 많아요."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니베아가 공동 개발 제안...로봇도 수출
안 대표의 궁극적 목표는 향후 원격 의료까지 연결해 피부 건강에 관련된 종합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4주의 당부 앱을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또 에니마 로봇의 수출을 늘릴 예정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 로봇을 수출하기로 계약했다. "중국 광저우의 투자업체, 일본의 메디칼노트라는 원격의료 스타트업과 계약했어요. 로봇이 수출되면 피부 진단기 뮬리도 함께 수출되죠. 여기에 화장품 원료와 용기도 계속 공급하고 피부 분석도 우리 AI를 거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기술 사용료를 받아요."
수출을 위한 양산형 로봇도 따로 개발 중이다. "내년 초 양산형 로봇이 나오면 수출을 늘릴 예정이예요."
여기에 화장품 제조로봇과 피부 분석기를 결합한 키오스크 사업도 할 예정이다. "항온 항습과 플라즈마 살균 소독기능까지 갖춘 키오스크는 사람이 들어가서 피부 분석을 하면 바로 화장품을 만들어줘요. 올해 말 중국과 제주에 설치할 예정입니다."
이런 성과와 계획 덕분에 안 대표는 최근 포스코, 벤처투자업체 TBT 등 7개사로부터 47억 원을 투자 받았다. 뮬리와 에니마 로봇을 위탁 생산하는 대구의 로봇제조업체, 화장품 원료를 공급하는 한국콜마도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또 세계적 화장품 업체인 독일 바이어스도르프에서도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니베아 액셀러레이터 3기의 대상 업체로 릴리커버를 선정해 공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15억 원을 예상한다. “내년에 수출이 늘어나면 매출이 급격하게 늘어날 겁니다.”
“지방과 여성에 대한 편견 깨고 싶다”
안 대표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대구 토박이다. 그는 대구를 떠날 생각이 없다. 인력 채용, 투자 유치, 사업 협력 등 여러 모로 서울에서 창업하는 것이 유리한데도 그는 굳이 대구에 회사를 차렸다. "지방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요. 지방 사람들은 서울만 못하다는 편견이죠. 서울에서 창업해야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렇다고 모두 서울로 가면 대구는 스타트업 불모지가 될 거에요. 서울에 지사를 내더라도 본사는 대구에 둘 생각입니다."
대구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대구의 젊은이들이 계속 빠져나가서 현지에서 좋은 인력을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사업 협력이나 투자를 받기 위해 KTX를 타고 서울을 오간 횟수가 2018년에만 500번이 넘어요."
그는 사업을 위해 결혼도 포기했다.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회사가 성장할 때까지 사업에 전념해야죠."
여성 창업가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는 것도 만만찮다. "투자 받으려고 정부 기관에 갔더니 남편이 무슨 일 하길래 여자가 사업하냐는 듯이 묻더군요. 창업경진대회에서도 전시공간을 찾는 방문객들이 저를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여자가 대표일리 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이런 편견이 오히려 그에게는 힘이 된다. "자존심 상하지 않아요. 오히려 더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사업가는 긍정적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요."
그래도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너무 힘들어서 퇴근하고 집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운 적도 많아요. 솔직히 지금도 힘들어요. 제일 힘든 것은 투자와 채용이예요. 투자를 잘 받아도 몇 분 동안 행복하고 그 뒤는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괴롭죠."
그렇더라도 창업은 해 볼만 하다는 것이 안 대표 생각이다. "극도로 힘들지만 해볼 가치가 있어요. 다만 창업하기 전에 해당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고 최소한의 돈을 확보해야 해요. 또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아군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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