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까지 숙이며 부동산 정책 사과
문재인정부 잘못 짚으며 본격 차별화
여당에 '이재명 예산·입법' 지원 주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허리까지 숙여 가며 사과했다. 이어 "집권하면 최우선적으로 강력한 부동산 대개혁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부동산 실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지만, 이 후보는 거침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겠다는 공개 선언으로 해석됐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은 이날 유럽 순방으로 한국에 없었다.
이 후보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케이스포(KSPO)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출범식 연설에서 "높은 집값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고 했다. '높은 집값'이 상징하는 부동산 실책의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지만, 이 후보가 사실상 대신 사과한 것이다. 이 후보는 또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대개혁의 적기"라며 제도 개혁을 통한 집값 잡기가 '이재명 정부'의 최대 과제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후보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으로 당장 할 수 있는 개발이익환수제 강화, 분양가상한제 전면 확대 등 제도개혁부터 하겠다”고 별렀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 이미 제출돼 있다. 또 "민주당, 정부와 협의해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대적 공급대책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민심 향해 "이재명은 문재인과 다르다"
이 후보는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만난 문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이 후보의 '말'은 그러나 문 대통령을 치는 쪽에 가까웠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빛과 그림자는 온전히 저의 몫"이라며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내 삶이 달라지냐는 국민의 따가운 비판에 당당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 삶을 제대로 바꾸지 못한 문 대통령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 정권의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을 민감해한다. 지난달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다. 문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것은 이 후보의 우선 순위가 아닌 듯했다. 그는 "투기를 막지 못해 허탈감과 좌절을 안겼고, 공직개혁 부진으로 정책신뢰를 얻지 못했고,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으로 결혼, 출산, 직장을 포기하게 했다"며 절절한 반성문을 썼다.
이 후보의 요지는 다음에 등장한다. "이재명 정부에선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2일 연설에서 이 후보는 '이재명 정부'를 7번이나 언급했다.
민주당 향해 '이제는 이재명의 시간'
이 후보는 민주당을 향해 앞으로는 '문 대통령의 시간'이 아니라 '이재명의 시간'이라고 못박았다. "이번 정기국회를 첫 번째 이재명표 민생개혁국회로 만들어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연말까지 이이지는 정기국회에서 이재명표 예산·입법을 관철할 수 있도록 협조하라는 사실상의 지침을 내린 것이다. 그러면서 부동산 개발이익환수 관련 입법, 자영업자에 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손실보상 확대 등을 예로 들었다.
이 후보가 이처럼 강한 신호를 발신함에 따라 여권 권력 지형은 이 후보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태도도 바뀌었다. 이 후보가 지난달 31일 깜짝 제안한 '전 국민에 재난지원금 30만~ 50만 원 추가 지급'에 대해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일 "당도 공감한다. 지급 방안을 놓고 검토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했다. "예산 국회가 한 달 남았는데, 내년 예산안에 어떻게 반영하라는 것이냐"는 뒷말은 쑥 들어갔다.
박정희 소환하며 "에너지 고속도로 깔겠다"
이 후보는 '용광로 선대위'의 출범을 환영하며 결전 의지를 다졌다. "가시밭길에 찢기더라도 국민이 걸을 길은 꽃길로 만들겠다"며 "국민이 대통령과 정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치가 국민과 나라를 걱정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 중도 확장을 노린 듯 박정희 정권을 소환했다. 이 후보는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의 신속한 국가투자에 나서겠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제조업 중심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탈탄소 시대를 질주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약속했다.
대선후보 경선 경쟁자들도 화합을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 동지"라고 부르며 "여러분이 민주당이고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이라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 후보는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우리가 이 후보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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