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편집자주
※ 한국 문학의 가장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4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살다보면 힘겹게 건너온 지난 시절을 물끄러미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내 마음밖에 몰라서 서툴렀던 순간과 내 마음조차 알 수 없어 막막했던 날들이 두서없이 뒤얽혀 심한 부끄러움과 낭패감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생의 어느 시절을 고통스럽게 통과하면서 얻은 상흔을 나이테처럼 새기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흔을 마주보기 위해서는 모종의 용기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초라하고 미숙했던 과거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 없이 어떤 상흔의 내력도 정직하게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김금희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열패감과 무기력, 불안에 휩싸여 스스로를 불행 쪽으로 내몰았던 청춘의 시간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그 시선은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를 서둘러 외면해버리지 않고 끝내 마주보려는 용기 위에 서있다.
이 소설집에는 다양한 삶의 고비를 무사히 넘지 못하고 발목이 걸려 넘어지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은 대학 입시에 실패한 채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거나 운 좋게 입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무감한 세상의 폭력 앞에 무참해진다. 상대에 대해 지녔던 설레는 마음은 사소한 오해가 중첩되면서 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어졌다 하더라도 이내 가뭇없이 어긋나 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젊은 시절 꿈꾸었던 정의로운 열정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세상 밖으로 유폐시켜버린 인물에 이르면 꿈, 사랑, 이상과 같은 청춘의 덕목들은 실패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는 거대한 역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툴렀기에 자신을 향하는 세계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채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시간을 응시하면서 김금희는 ‘성장(成長)’뿐만 아니라 ‘생장(生長)’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관념적인 성숙의 차원을 포괄하는 성장과 달리 생장은 삶의 생물학적 물성을 보다 핍진하고 또렷하게 감각하게 만든다. 푸른 나무 잎사귀가 주위의 모든 빛과 물을 힘껏 빨아들이듯 청춘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스스로를 열어놓고 있는 힘껏 그것들과 부대끼는 것이다.
열려 있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을 통과하고도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다 여전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이와 같은 의문은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김금희의 이 소설집은 지나간 시간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응시의 힘이 삶의 진실에 다가서는 유력한 통로임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