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리스 브랜드 '퓨즈서울' 김수정 대표
작은 사이즈·싸구려 원단 등 의류 성차별 지적
남성복만큼 편하고 질 좋게… 매출 50억 앞둬
'이 값 주고 살 옷은 아니네요.' 여성쇼핑몰 제품후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많은 여성복이 남성복보다 훨씬 사이즈가 작고, 싸구려 원단을 쓰며 주머니·안감을 없애고 허술한 마감질을 하는 것은 '보여지는 라인'만 강조하는 오랜 관행 때문이라는 게 김수정(28) 퓨즈서울 대표의 생각이다.
'젠더리스' 의류 브랜드 퓨즈서울은 소비자가 옷의 값어치를 제대로 느끼게 하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지난 2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단벌신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남자는 옷 한 벌 사면 오래 입는다는 인식 때문에 같은 가격에도 품질 좋은 옷을 만들었던 것 같다"며 "그사이 여성은 그것이 차별인지도 모르고 더 비싼값에 질 낮은 옷을 구입했던 셈"이라고 말했다.
남성복에는 있고, 여성복에는 없는 것
퓨즈서울은 2016년부터 여성쇼핑몰을 운영하던 김 대표가 2018년 따로 론칭한 브랜드다. 남성복에 쓰이는 좋은 원단과 봉제기술, 활동성을 고려한 편한 옷을 김 대표가 직접 디자인해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매한다.
처음엔 젠더이슈에 묶여 특정 계층 위주로 팔렸지만, 품질이 입소문을 타면서 남성 고객까지 유입돼 올해 매출 50억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옷에 숨은 차별을 분석한 에세이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시공사)를 펴내기도 했다.
시작은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으로 페미니즘에 눈뜨면서부터였다. 분노를 담아 티셔츠에 '걸스 캔 두 애니띵(Girls can do anything)' 문구를 새겼는데, 그 해 여름에만 1만 장을 팔았다. "이렇게 수요가 많은데, 업계 누구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더라고요. 누군가 왜 이런 걸 하냐고 물으면 '아무도 안 하니까'라고 답했어요."
남성복과 비교해보니 여성복은 제작부터 유통 과정까지 부조리했다. 김 대표는 "한 브랜드에서 나온 커플룩도 남성용은 착용감 좋은 TR원단을, 여성용은 저렴한 폴리에스테르 원단을 사용한다"며 "남성용 바지에만 허리 안감이 있거나, 올이 풀리지 않는 봉제법('쌈솔' 방식)을 쓰는 등 차별적인 요소는 수없이 많다"고 설명했다.
매년 매출이 두 배씩 오르자 김 대표는 점점 확신이 생겼다. 일상복에서 운동복, 생활한복으로 카테고리를 늘려갔다. 최근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중심의 '가치소비'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더욱 입소문을 타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이 향후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제품이 좋으면 결국 사게 된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퓨즈서울은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 하반기 오프라인 매장 개점도 추진 중이다. 지금보다 대중성을 높이는 숙제도 안고 있다. 김 대표는 "MZ세대는 신생 브랜드라도 직접 체험해보고 추천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퓨즈서울도 그렇게 커온 것"이라며 "인플루언서 마케팅, 굿즈 사업 등을 확대해 소비자 접점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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