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위기 생각하는 먹거리 선택 중요해져
온실가스 배출·물 사용↓...'환경 중시 식생활' 각광
'탄소 발자국' 줄이는 소비 위해 Z세대 지원해야
"소비 환경서 육류 광고↓등 정부·기업 나서야"
"이제 우리는 자연의 정복자로서 긴 역사를 끝내고 보호자가 될 기회를 맞았습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 개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목소리에 힘을 잔뜩 넣었다. 한국을 포함해 100개가 넘는 국가 지도자들이 2030년까지 '산림·토지 이용 선언'을 공동 발표하며 지구를 보호하자고 약속했다. 삼림 파괴와 토지의 황폐화로부터 숲을 지켜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소한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빵 한 조각, 초콜릿 하나도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먹어야 할 때가 됐다. 말이 나온 김에 초콜릿의 '탄소 발자국(온실가스, 이산화탄소 등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려주는 지표)'은 어떻게 될까.
결과는 생각보다 충격적이다. 영국 BBC방송이 제공한 지표에 따르면 1년 동안 밀크초콜릿 바 1개를 일주일에 1, 2회 구매한 것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 80kg을 기여한 셈이다. 또 일반 휘발유 자동차를 330km 운전하고, 5,666리터(ℓ)의 물로 8분 동안 87회 샤워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존슨 총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죄책감 없는 초콜릿"을 즐길 수 있을까. 칼로리가 낮아서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이 아니라 환경에 죄책감이 없는 초콜릿을 말이다.
'감자 우유' 시대 온다...환경 중시 식생활이란
커피전문점에서 라테를 주문한다고 가정해보자. 가끔 우유 종류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감자 우유'를 권유받는다면 어떨까. 황당한 얘기가 아니다. 조만간 감자로 만들어진 새로운 대체 우유가 출시될 테니까.
실제로 내년 2월 스웨덴 브랜드 더그(Dug)는 감자 우유의 판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미 유럽의 식품회사들은 우유의 대체제인 식물성 우유를 앞다퉈 생산하고 있다. 더그, 오틀리(Oatly) 같은 스웨덴 회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스위스 기업 네슬레(Nestle)도 올초 식물성 우유 브랜드 '운다(Wunda)'라는 완두콩 우유를 내놓았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감자 우유로 만든 라테를 마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식물성 우유로 만든 커피 역사가 길지 않아서다. 국내 스타벅스는 지난달 '오트 밀크'를 기본 옵션으로 도입해 선보였다.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오트 밀크는 출시 한 달 동안 판매량이 20만 잔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후 친화적 가치 소비와 연결된 판매 효과였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음료를 표방했던 마케팅이 젊은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곳곳에선 일찌감치 우유 대체제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귀리와 쌀, 아몬드, 완두콩, 코코넛, 헤이즐넛 등에서 뽑은 것들이다. 이 때문에 많은 영국인들은 동물성 우유 대신 식물성 우유를 선택하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 전문업체 민텔에 따르면 영국인 3명 중 1명은 정기적으로 식물성 우유를 마시고 있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지난해 식물성 우유에 총 3억9,400만 파운드(약 6,340억 원)를 지출했으며, 이는 2019년보다 32% 증가한 수치다.
그래서 감자 우유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최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 대형 슈퍼마켓 웨이트로즈(Waitrose)의 연례 식품 및 음료 보고서는 "보잘것없는 감자로부터 나온 식물성 우유가 내년 가장 큰 식품 트렌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이 보고서는 유제품 알레르기를 넘어 기후 영향에 대한 걱정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식물성 제품을 찾게 함으로써 대체제 시장의 크기가 앞으로 5년 동안 지금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웨스트로즈의 보고서는 '환경 중시 식생활(Climatarianism)'이라는 새로운 식단에 주목했다. 이 보고서의 설문에 참여한 2,000명의 영국인 중 70%가 식단의 '탄소 발자국'이 "매우" 또는 "다소" 중요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는 식물성 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환경 단체인 프렌즈오브더어스(Friends of the Earth)는 "집약적으로 생산된 육류는 전 세계 온실 가스 배출량의 14.5%를 차지한다"면서 "식품 기업들은 음식에 대한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완두콩 술·3D 프린팅 스테이크가 지구를 살린다고?
특정 술을 마시면 정말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알코올 음료를 만드는 것은 환경을 해치는 일이지만, 영리한 기업들은 소비자가 양심을 지키면서도 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최근 영국 데일리와이어는 영국인들이 지난해 독주인 진(gin)에 22억 파운드(약 3조5,000억 원)를 썼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는 현재 약 6,000가지의 진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2013년에 150여 개 존재했던 진 양조장은 현재 440여 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증류주의 성장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데일리와이어는 전했다. 전통적으로 진은 밀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대기·수질 오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소 비료'를 필요로 해서다.
그래서 주류업체들이 고안해낸 것이 완두콩이다. 완두콩으로 생산된 증류수는 지구 온난화, 자원 고갈 및 산성화 등을 포함한 12개 분야에서 '환경 발자국(제품의 생애 주기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 등을 나타내는 것)'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완두콩은 동물 사료로 쓸 수 있는 부산물과 함께 밀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제공한다고 데일리와이어는 전했다. 주류업체들은 "완두콩의 탄소 발자국을 상쇄하는 것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에서 생산되는 세계 최초의 친환경 진 브랜드 '나다르(Nàdar)'는, 700밀리리터 병당 -1.5㎏ CO₂e의 탄소 발자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온실가스를 1.5㎏ 줄였다는 것이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주류업체들은 또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신생업체 엔들리스 웨스트(Endless West)는 실험실에서 '분자 위스키'를 만들었다. 이 업체는 "풍미와 향, 색감 등을 담당하는 전통 증류수의 분자를 확인하고, 이를 식물과 과일, 효모에서 대안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험실에서 재배한 고기로 불리는 '배양육' 시장도 기후 변화 위기 속 미래지향적 사업으로 꼽힌다. 기존의 농업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고 토지와 용수 사용량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앞으로 30년 뒤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난 문제도 배양육 시대를 재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투자자들은 대체육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일찌감치 빌 게이츠는 멤피스미트와 뉴에이지미트를 후원하고 있고,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리캐프리오도 네덜란드의 모사미트와 이스라엘의 알레스팜스에 투자하고 있다.
다만 이들 선도기업들엔 각종 규제를 푸는 것뿐만 아니라 재료비를 낮춰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배양육 스테이크를 선보였던 알레스팜스가 2월 '3D 프린터'로 세계 최초의 실험실 재배 '립아이 스테이크'를 만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량생산을 통해 육류 대체품 시장에 도달해 비용을 낮추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팅 기술은 실제 고기와 유사하게 구현해내는 장점이 있다. 인공지방과 인공단백질 등을 혼합한 3D 프린팅은 고기의 미세한 마블링이나 색감, 단단함 등의 복잡한 구조를 표현해내는 데 탁월하다. 현재 여러 배양육 기업들이 햄버거 패티나 소시지, 미트볼 등 가공육에 집중하는 건 실제 같은 고기를 구현하기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3D 프린터로 갓 만들어진 인공고기를 먹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Z세대의 환경적 가치소비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비영리기구인 세계자원연구소(WRI)는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8~23세 사이의 Z세대가 기후 변화 운동에 많이 목소리를 내며 민감해하지만, 정작 노인층보다 동물성 식품을 더 많이 산다는 결과가 나왔다.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얘기다. 먼저 WRI에 따르면 미국의 Z세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93%는 환경 보호 및 건강 관련 이슈가 지속 가능한 식품 구매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소비활동과는 차이를 보였다. 매년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식생활을 조사하는 영국 국립식생활영양조사(NDNS)는 2008~2012년 젊은 층(19~30세)이 65세 이상 노년층보다 붉은색 육류와 가공육을 더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영국 슈퍼마켓 세인즈버리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세인즈버리에 따르면 2017~2020년 전국 체인의 육류와 생선 및 가금류 판매량이 7%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Z세대 소비자들의 이 부분에 대한 소비는 32% 증가했다. 특히 기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소고기의 판매량도 Z세대에서 가장 크게 증가했으며, 4년 사이 35%나 뛰었다. 노년층에선 소고기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WRI는 "육류와 생선 및 가금류 제품의 총 판매량은 감소했지만 젊은 고객들은 이러한 추세를 거부하고 오히려 구매력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Z세대는 왜 환경적 가치와 식습관 사이에서 괴리를 보이는 것일까. WRI는 소비 환경이 개인이 무엇을 사거나 먹을 것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이는 "건강에 좋거나 지속 가능한 식품만을 구매하기 위해 식료품점에 갈 수도 있지만 결국 장바구니에 담는 것은 습관, 친숙함 또는 상점의 진열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환경을 걱정하는 젊은 세대의 의지가 행동으로 옮겨지기 위해선 사회적 도움이 필요하다. 100여 개국 정상들이 COP26에서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바꾸려는 노력에 동참한 이유다. Z세대가 가치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및 정책 지도자들이 지속 가능한 식품 미래로 전환하는 것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WRI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소셜 미디어와 매장 등 소비 환경에서 육류 위주의 광고를 줄이고 다양한 식물성 기본 옵션을 제공하며 이것이 편리하고 경제적인 선택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식습관이 지속 가능한 음식에 대한 관심을 따라잡을 수 있다면, 전 세계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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