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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7,000보 걷기가 ‘불로초’

입력
2021.11.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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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운동의 효능은 하루 7,000보 정도면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걷기 운동의 효능은 하루 7,000보 정도면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병에 걸리지 않고 90세 넘게 건강하게 지내다 사나흘 앓고 조용히 삶을 마감하는 인생을 모두 꿈꾼다. 그러나 대다수 현대인은 의술에 의존하는 ‘유병장수(有病長壽)’가 현실이다. 오죽하면 ‘유병장수 건강보험’ 상품까지 나왔겠는가.

그러다 보니 건강장수를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의 행태가 2,2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위해 온갖 곳을 찾아다니고 한줌 넘는 건강보조제까지 매일 챙긴다.

그런데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불로초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바로 ‘걷기’다. 걷기의 효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걷는 것만으로 운동 효과를 얻으려면 하루 1만 보는 걸어야 한다며, 만보계를 허리춤에 차고 뛰다시피 걷는 사람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1만 보 걷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금세 포기하는 이가 허다하다. 사실 ‘하루 1만 보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도 희박하다. 애초에 1만 보 걷기의 출발점도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운동에 관심이 높아지자 시계 부품 제조업체 ‘아마사’가 1965년 세계 최초로 걸음거리를 재는 ‘만보계(萬步計)’를 내놓으며 시작한 마케팅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포장된 것이다. 하루 1만 보라는 똑떨어지는 숫자가 일반인에게 각인되면서 1만 보 걷기 붐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하루 얼마나 걷는 것이 건강에 좋은지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2019년 아이민 리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한 논문에서 70대 여성 1만6,741명을 대상으로 걸음걸이 수와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걷기가 조기 사망 위험을 낮추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하루 4,400보 정도 걸으면 2,700보 이하로 걷는 것보다 조기 사망할 위험이 40%가량 줄었다. 이런 연구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하루 7,500보 이상 걸어도 건강에 더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무리하게 걷는다고 더 좋은 효과를 거두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미국 매사추세츠대 공동 연구팀이 38~50세 남녀 2,11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하루 7,000보 이상 걸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기 사망 가능성이 50~70% 줄어든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걷기 속도와 운동 효과 사이의 상관관계다. 천천히 걷는 건 별 효과가 없다며 무리해서 빨리 걷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역시 과학적 근거가 없다. 빨리 걸으나 천천히 걸으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건강장수의 핵심은 하루 7,000보 이상 걷기, 즉 하루 30분 이상 지속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있다.

지구상 어떤 슈퍼 푸드의 효능을 살펴봐도 걷기만큼 뚜렷이 사망률을 낮춰주는 것은 없다. 건강장수를 위해서는 1만 보니 속보(速步)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걷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7,000보 이상 걸으면 좋지만 그 이하라도 상관없다. 굳이 빨리 걸을 필요도 없다. 마침 걷기 좋은 계절이다. 당장 오늘부터 하루 30분씩 집 주변 산책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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