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생활지원사들이 쓰는 '맞춤광장' 앱
모든 서비스 과정 시작·종료 버튼 눌러야
일정 갑자기 바뀔 경우, 허위 기록도 유도
편집자주
아동·노인·장애인 등을 돌보는 돌봄 노동자는 110만명.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 평균 임금의 절반만 받고 있습니다. ‘반값’으로 매겨진 돌봄 노동 문제를 <한국일보>가 3회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노인생활지원사들은 의무적으로 '맞춤광장'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휴대폰에 깔아 업무기록을 남겨야 한다. 하지만 이 앱이 업무효율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허위 기록까지 남기도록 유도하는 등 돌봄 노동자들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예를 들어 중점돌봄대상자인 A씨의 집에 도착하면, 즉시 앱을 켜고 실행버튼을 누른다. 그 다음단계부터는 수행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말벗, 청소지원, 생활교육 등 각 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시작과 종료 버튼을 일일이 눌러야 한다. 만약 시간을 놓쳐 제대로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일지에 따로 그 사유를 적어야 한다.
대구에서 생활지원사로 일하는 박지원(가명ㆍ52)씨는 “(버튼 누를 타이밍을 놓칠까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계속 휴대폰을 보고 있어야 해서, 어르신들이 무성의하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앱을 만든 게 아니라 생활지원사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종종 허위로 업무기록을 남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경기에서 생활지원사로 일하는 이정은(가명ㆍ50)씨는 “어떤 날은 막상 돌봄대상자 집에 도착해도 어르신이 부재 중이거나 친구분이 와 있어 돌봄서비스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그냥 집 주변을 배회하면서 시간을 때운 뒤 기록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면 차라리 다른 어르신 댁에 가서 그만큼 시간을 더 쏟으면 좋잖아요. 그런데도 센터에서는 원래 예정된 서비스 종료 시간까지 그 집 주변에 대기를 했다가 종료버튼을 누르라고 해요. 중점돌봄대상 어르신 같은 경우에는 두 시간씩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 대문 밖에 서서 한참을 기다린 적도 있어요. 차질 없이 시간 기록을 남기는 게 (복지부나 지자체로부터 받는) 실적평가에 영향을 주나 봐요. 이런 허위기재나 업무방식이 비효율적이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앱을 켜는 순간 위치추적이 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어요. 업무효율을 위해 만든 앱인데, 이 앱이 오히려 생활지원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봐요.”
복지부는 기존 일정에 맞춰 업무시간을 기록하는 것과 실적평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돌봄대상 한 명 한 명이 편한 시간대에 원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행기관에서 오해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맞춤광장 앱은 복지부가 아닌 민간업체가 개발한 앱인데, 갑작스럽게 계획을 변경하고 업무결과를 기록하기 어려운 점 등 현장에서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을 통해 대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업무시간 허위기재’는 복지부가 명확한 평가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수행기관 관계자는 “고정된 평가지표가 없고, 평가표에 적힌 문구도 모호한 탓에, 현장에서는 ‘책잡힐 일을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이 때문에 어떻게든 정해진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한 것처럼 기록에 남기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아직 사업시행 후 만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평가지표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현재 평가지표 항목 등을 검증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값' 돌봄 노동자의 눈물]
①민간기관의 임금 착복
②'내 돈' 내며 영업까지
③대가 없이 좋은 돌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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