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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X 왜 막아" "놀기만 해" 욕설에 조롱… 공공근로 노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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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X 왜 막아" "놀기만 해" 욕설에 조롱… 공공근로 노인의 눈물

입력
2021.11.09 04: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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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깃발 치고 주행하는 차량에 ‘화들짝’
엉뚱한 민원에 노인 15명 근무지 이동도
정상 업무 노인에 험한 말에 역민원 넣어
"갑질 민원인데도 약자인 노인만 쫓겨나"

박구원 기자

박구원 기자

경기 포천시에서 노인공공근로를 통해 매일 아침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윤모(77)씨는 얼마 전 쏜살같이 자신 앞을 지나친 차량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차량 통제를 위해 들어 올린 깃발을 한 차량이 그대로 치고 가버려 하마터면 차량과 충돌할 뻔했다.

윤씨는 8일 한국일보에 “충돌은 피했지만, 차량이 손에 쥔 깃발을 ‘탁’ 치고 지나치는 바람에 놀라 넘어질 뻔했다”며 “운전자가 욕설과 함께 ‘왜 차를 막느냐’고 소리쳐 하루 종일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교통정리 참여자인 김모(80)씨는 근무시간(오전 7시 30분~9시) 전에 잠시 길거리에 앉아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행인이 김씨가 앉아 있는 것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노인들이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한다”며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틀린 민원이었지만, 이 일로 김씨를 포함한 노인공공근로자 15명이 인근 학교 등으로 근무지를 옮겨야 했다. 김씨는 “갑질성 민원이었는데도 약자인 우리만 쫓겨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경기 포천의 한 고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한 노인이 깃발을 들고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지난달 경기 포천의 한 고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한 노인이 깃발을 들고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성실하게 일하는 공공근로 참여 노인들이 일부 시민의 비뚤어진 의식과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수난을 겪고 있다. 손자뻘 되는 20~30대 시민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듣는가 하면,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반발해 오히려 '역민원'을 넣어 곤경에 처하는 일까지 겪고 있다.

지난 6월 공원 환경정화에 나선 경기 양주시 80대 여성 노인이 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당시 벤치에 대형견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견주에게 “개의 발에 흙이 묻어 있으니 벤치에 앉지 말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견주로부터 “똑바로 일하라”는 험한 말을 들었다. 심지어 견주가 지자체에 민원을 넣어 자신이 속한 노인일자리팀 반장이 사과까지 했다.

일부 노인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경기 포천의 70대 노인은 “한번은 오토바이를 탄 20대 남성 2명이 내가 들고 있는 교통정리 깃발을 빼앗아 달아나며 조롱을 퍼부어 눈물이 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노인이 시설장으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앞서 경기지역 한 맘카페엔 70대 노인이 자신이 근무하는 노인주간보호센터 대표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노인의 가족은 “대표가 요양보호사 보조 업무를 하는 아버지에게 수고비를 주고 자기 집 마당과 텃밭을 정리하는 일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국민에게 제공되는 ‘노인일자리 공익활동’ 참여자는 올해 60만 명에 달한다. 대부분 등하교 교통정리, 공원관리, 환경정화, 독거노인 말벗 등 월 30시간 정도 일하고 급여로 21만~27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당국과 지자체는 일자리 제공에만 신경 쓸 뿐 노인들이 근무 중에 겪는 수모와 갑질은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복지 전문가들은 일자리 제공 형태로 소득을 보장해 주는 사업 방식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거리가 깨끗해지는 성과가 나오더라도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형태를 유지하는 이상 어느 정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기본소득 등으로 수입을 보장해주고 기존 일자리 사업을 봉사 성격의 사회적 참여 활동으로 전환하면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노인들의 사회 참여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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