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최대 피해자는 최빈국 여성 청소년
"기후위기로 학업 중단, 2025년엔 1,200만명"
성평등도 후퇴… COP26에 "관심과 지원" 호소
지구온난화는 모두가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하는 지구촌 공동 과제이지만, 그 영향을 모두가 똑같이 고르게 받는 건 아니다. 부국보다는 기반 시설이 부족한 빈국에, 남성에 비해 여전히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기상이변이 빈발하고 위력을 더할수록, 둘 사이 교집합에 놓인 ‘가난한 나라의 소녀’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배가된다는 얘기다. 기후정의와 젠더정의를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이유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비영리기금 ‘말랄라펀드’를 인용해 “올 한 해에만 기후 관련 문제로 저소득국가 소녀 400만 명이 교육을 마치지 못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면 그 숫자는 2025년까지 매년 1,200만 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각 가정에서 주로 여자아이들이 피해 복구나 돌봄 노동에 동원되는 터라 학교 결석은 물론, 아예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마저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말랄라펀드는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 여성교육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설립한 여성교육권 단체다.
예컨대 극심한 가뭄으로 식수원이 오염되거나 말라 버리면 먼 곳까지 걸어가 물을 긷는 일은 주로 여성에게 맡겨진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떠맡기는 일도 흔하다. 2016년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또는 소녀가 매일 물을 얻기 위해 쓰는 시간의 총량은 무려 2억 시간에 달한다. 날짜로 환산하면 830만 일, 햇수로는 2만2,800년이 넘는다. 산자이 위제세케라 유니세프 위생·건강 부문 책임자는 “석기 시대에 빈 양동이를 들고 물을 뜨러 갔는데 2016년까지도 물을 갖고 집에 도착하지 않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그 시간 동안 세계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를 떠올려 보라. 그 시간에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성취할 기회를 놓쳤는지 생각해 보라”고 일갈했다.
교육권 박탈만 문제인 건 아니다. 기후변화는 가난한 소녀들을 조혼으로 내몬다. 성폭력 위험도 커진다. 일례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서 여성·소녀 10명 중 8명이 물을 떠 오는 길에 성폭행과 괴롭힘에 노출돼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기후재난 발생 시 여성 사망률이 남성보다 14배 높고, 기후 난민 80%가 여성이라는 유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참혹한 숫자들은 전 세계 빈곤층 70%가 여성인 것과도 무관치 않다. 여성이 더 가난하기 때문에 재정적 안전망이 부실하고, 교육 기회가 적어 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런 취약성 때문에 재난을 맞닥뜨리면 빈곤도 더욱 심화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서 성평등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전 세계 기금 중 고작 0.01%만이 기후·여성 문제 관련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도 마찬가지다. WP는 “COP26에 제출해야 하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여성 청소년 교육권에 대한 투자 방안, 그것이 국가적 기후 대응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지 않는다”며 “기후변화를 교육 문제와 연관지어 언급한 나라는 10곳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COP26에 참석한 유사프자이도 “모든 어린이가 교육받지 않으면 향후 수십 년간 회복력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소녀들에게 그렇다. 교육은 여성들이 기후위기 해결책을 개발하고 친환경 일자리를 확보하도록 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9일은 COP26이 정한 ‘젠더의 날’이다. 각국 대표단은 성평등에 초점을 맞춘 기후 정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빈곤 문제를 다루는 국제비정부기구 액션에이드에서 활동하는 영국 배우 에마 톰슨은 더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내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강력히 호소했다. “젠더의 날을 맞아 여성과 소녀를 기후위기 해결책 중심에 놓아 달라. 여성과 소녀를 위해 그들이 직접 고안한 기후 행동이 필요하다. 그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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