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장욱 '캐럴'
편집자주
※ 한국 문학의 가장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4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스크루지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약한 수전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유령들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차례로 지켜본 뒤 개과천선하여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한다.
개심 비슷한 것도 나와 있지 않은 이장욱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 디킨스의 동명소설을 연상시키는 것은 제목 때문이 아니다. 서로가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하는 청년, 중년, 노년의 세 남자가 시간이 뒤엉켜 있다는 암시 속에서 조우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캐럴'이 스크루지 이야기를 패러디하면서 감동적이지만 소박한 교훈을 멀리하는 대신 동화적인 시간여행을 은밀하고도 혼란스러운 시간의 뒤엉킴으로 변주하며 심화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을까?
하지만 이장욱 작가가 한 일은 단지 디킨스의 소설을 변주해본 것에 그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스크루지 이야기 안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지만 아직 구현되지 않은, 비유컨대 ‘망각된 미래’ 같은 것을 끄집어 낸 것이다. 도덕적인 교훈과 감동 때문에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디킨스의 동화적인 시간여행에는 ‘과거와 현재 안에 이미 예고되어 있는 망각된 미래를 기억하기’라는 흥미로운 테마가 숨겨져 있다.
이장욱은 바로 그 테마를 끄집어낸 셈인데 여기에 기이한 중첩과 뒤엉킨 자기지시(망각된 미래를 기억하기라는 망각된 미래를 기억해내기)가 생겨나고 있어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기이한 중첩과 뒤엉킨 자기지시가 망각된 미래를 기억하기라는 테마와 결합하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쓰이는데 같은 원리에 따라 이 단편소설의 앞뒤로 이어지는 연장선이 그려지고 그 연장선들이 뒤엉켰을 때 비로소 장편소설 '캐럴'이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캐럴'의 몇몇 장면에서 바흐의 '평균율'이 ‘무한재생’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흐가 구사하는 푸가의 기법은 어떤 순간을 잠재적으로 모든 미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고 가능한 미래들을 모조리 구현해버리는 것이니까. 겉보기에 조화로운 통일성을 추구하는 듯 보이는 바흐의 세계 아래에는 그 통일성이 같은 모습으로 멈춰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는 분화 또는 다양화의 힘이 항상 들끓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곧 '캐럴'의 구성 원리다. 이 점에서 '캐럴'에 삽입된 '평균율'에도 기이한 중첩과 뒤엉킨 자기지시가 구축된다. 누구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면서 정교하게 분화하거나 뒤엉키고 중첩되는 장치들을 찾아내 이 텍스트의 분열 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