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의 질문]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주 4일제가 새로운 의제로 떠올랐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1호 공약으로 내놓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히면서다. 최대 주 52시간 근로제가 전면 적용된 시점에 주 4일제에 또 환호가 터져나온다. 갈수록 일-가정의 균형을 중시하게 되는 사회 가치의 변화를 반영한다. 하지만 규제 사각지대에선 장시간 노동으로 쓰러지는 일이 현실이다. 9일 세종시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만난 김승택 노동연구원 부원장은 “생계유지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면 주 4일제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세계에서 2번째로 긴 시간을 일하는 나라다. 2004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40시간 노동을 공식화했지만 편법 해석으로 주 68시간 노동을 허용했고, 2018년에야 최대 주 52시간 노동을 법제화했다.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장시간 노동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근로시간이 짧은 나라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아주 높은 나라들이다. 또는 소득이 높지 않아도 삶의 가치를 돈 버는 일보다 가족과 여가에 둬 긴 근로시간에 반감이 큰 나라들, 주로 라틴 국가들이다. 우리나라는 오래 일하는 게 근면하고 회사에 공헌하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강해 주 5일제 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반감이 컸다. 지금은 MZ세대를 중심으로 개인 시간을 중시하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방해 요소가 있다. 근로시간과 관련성이 큰 소득은 선진국 수준에 들어설 듯 말 듯한 수준이다. 제도적으로 수당이 높으니까 연장근로를 선호한다. 제조업체에서 연공이 길고 힘있는 사람들이 야간·휴일 근로에 우선 배치되는 상황이다. 또한 새로운 변화로서 건별로 임금을 받는 플랫폼 노동, 시간당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임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길게 일할 수밖에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은 충분히 높지 않고 제도적 약점이 결합돼 장시간 노동이 유지된다.”
“주 4일제 도입한 나라, 실업 극복이 목적”
-프랑스가 주 35시간 근로를 하고, 스페인과 아이슬란드가 주 4일제를 시범실시했다. 주 4일제 시행이 가능한 조건은 무엇인가.
“실질적으로 주 4일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프랑스 한 곳이다. 1990년대에 경제가 침체해서 근로시간이 줄었을 때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도입됐다. 청년 실업률이 40%나 됐기 때문에 임금을 깎더라도 청년층에 일자리를 주자는 좋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 학계가 논쟁을 많이 벌였고 혼란도 심했다. 우선 반나절을 빼기로 하고, 어느 날을 뺄 건지, 직원들이 나눠서 쉴 건지 등을 회사마다 시험해 자율적으로 정했다. 5~10년이 지나 고용이 안 늘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 등 정치적 공격이 나왔다. 상이한 연구 결과도 많았는데 종합적으로 보면 큰 변화가 없다. 고용과 임금은 조금 늘고 성장률은 약간 떨어진 정도다. 프랑스에서 주 4일제가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돈 버는 걸 아주 열심히 하지 않는 문화, 대학까지 학비 무료 등 공고한 사회안전망이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나라와는 환경이 매우 다르다.
스페인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청년실업률이 70%나 올라간 경험이 있었는데 최근 코로나를 맞아 강한 폐쇄 정책으로 경제가 급속히 가라앉자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의견이 부상했다. 역시 실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올가을부터 3년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근무시간을 줄이되 고용을 유지하면 임금 차액을 정부가 지원해 준다. 첫해엔 차액 전액을, 둘째 해엔 50%, 셋째 해엔 33%를 지원한다. 4년차에 지원금이 없어질 때 노사가 주 4일제 유지에 합의할지 지켜봐야 한다. 아이슬란드는 주 4일제 사례로 들기는 무리다. 병원 유치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것에 불과하다. 효과도 좋다는 건데 객관적으로 신뢰할 만하지 않다. 인구 35만 명의 관광·금융 등 서비스업 중심 국가에서 한 작은 실험을 우리나라에 대입하기 어렵다.
결국 무엇 때문에 주 4일제를 해야 한다는 명확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시행이 어렵다. 청년층이 주 4일제를 환영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청년층도 충분한 소득이 없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소득이 올라가는 조치와, 생계 유지를 위한 두꺼운 안전망 확충이 병행되지 않으면 근로시간 단축은 어렵다.”
“단축해 보니 임금·채용 큰 변화는 없어”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과 고용이 어떻게 변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주 5일제, 주 52시간이 적용된 후엔 어땠나.
“주 5일제 도입 땐 사업주 측 반대가 심해 예외조항을 많이 둬서 초과 수당만 주면 주 68시간까지 초과 근로가 가능했다. 그런데 대다수 기업은 토요일 오전 근무만 하던 정도라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산술비례적으로 임금이 18% 오를 거라던 경제단체들 주장은 어림없고, 기업규모에 따라 1~2%씩 올랐다. 근로시간은 큰 폭으로 단축됐다. 생산성도 향상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0인 이상 제조업체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생산성, 즉 1인당 부가가치는 평균 1.5% 향상됐다. 생산성 향상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비용 상승을 상쇄했다.
주 52시간 상한제에선 장시간 근로를 하던 사업체의 경우 채용을 하거나 기계화하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한다. 최근 노동연구원 남재량 연구위원의 연구를 보면 야간근로에 휴일근로까지 하던 사업장은 신규 채용을 한다. 주로 대기업 협력업체인 제조 중소기업들이다. 이들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또 중소기업에 특별연장근로 12시간을 허용했고, 탄력근로제가 제조업의 10%에서 25%로 늘어나면서 노동비용이 커버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노동비용과 고용 모두 크게 늘지는 않은 것인데 아직은 초기라 좀 더 봐야 한다.”
-주 52시간제도 무리 없이 안착한 건가.
“변수가 있다. 코로나19 상황이다. 장시간 근로를 하던 업체들이 지금 휴업 상태인 곳이 많아 정상화되면 고용과 노동비용이 올라갈 수도 있다. 그때는 고용유지지원금 재원을 주 52시간 채용 지원을 위해 써야 한다. 또한 제조업에서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대기업에서 먼저 자동화 설비 투자가 늘고 있고 중소기업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가 트렌드인 자동화·디지털화와 맞물려, 경영자 입장에선 비용 상승, 24시간 가동 여부를 고려해 노동자보다 기계가 유리하면 자동화를 선택하게 된다. 노동 규제에 균형이 필요한 이유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시급한 건 생계 유지”
-지금 주 4일제 도입이 가능한 기업은 얼마나 될까.
“주 52시간 상한제를 하며 대기업, 중소기업을 두루 만났는데 다수 기업은 근로시간이 52시간 미만이었고 시행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연장근로는 중소기업, 즉 기업의 90%(임금근로자의 80%)에서 안 하는 경우가 없다. 주 42~50시간쯤 일한다는 뜻이다. 주 4일제는 일반적으로 35~36시간이 표준근로시간인데 연장근로 없이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근로자한테 같은 수준의 월급 주면서 비슷한 수익 내면서 주 4일제가 가능한, 생산성 높은 기업은 대기업을 포함해 10%도 안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4일 근무에 환호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택배·배달·경비 등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하는 노동자가 공존한다.
“환호할 일부는 수익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업체다. 그렇지 않으면 환호할 이유가 없다. 지금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플랫폼 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지 못한다. 시간당 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소득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이냐고 한다. 그들에게 주 4일제는 직업을 하나 더 가지라는 말밖에 안 된다.”
-근로시간 단축이 가장 절실한데도 정작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 즉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규제할 방법이 없나.
“지금 제도에선 못 한다. 장시간 일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사회안전망이 먼저 있어야 한다. 최근 급진전이 있었는데 전 국민 고용보험, 플랫폼 노동자 산재보험 포함 등이다. 고용보험도 아직 소득 측정 등 숙제가 남아있지만 포함될 예정이다. 물론 아직 부족하다.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주거 불안도 해결해야 하고, 경제가 나빠 일자리조차 없는 지경이면 구호금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생계 보장부터 하고 일을 못 할 때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야 장시간 노동을 규제할 수 있다.”
“위기 닥쳐야 격차 줄이기 타협 가능”
-플랫폼 노동자까지 모두 근로기준법에 포함시키면 어떤가.
“근로기준법은 제조업 노동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유연 근로를 하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맞지 않다. 법 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노조가 보호하고 있는 근로조건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고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사업주 부담도 커지는데 영세사업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법 학자들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별도의 법으로 보호하는 방법도 있다. 민주당이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을 발의하기도 했는데.
“가능한데 역시 논쟁이 있다. 근로기준법과는 노동자 보호 수준이 다를 텐데 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같은 수준으로 보호하려면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가운데 지점에서 타협하려면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평소라면 어려울 테고,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처럼 심각한 위기를 맞아 ‘다 같이 살기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긴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지금의 코로나 위기는 기회가 아닌가?
“코로나는 모두에게 위기가 아니다. 자본소득과 근로소득 간 격차, 안정된 직장과 불안정한 직장의 근로자 간 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다. 재택근무가 너무 좋다는 직장인이 많고, 해외 출장을 안 가니 비용이 절감돼 수익이 났다는 기업도 있다. 피해는 비정규직, 파트타임, 영세 자영업자에게 집중됐다.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위기가 아니다.”
“노동시간 규제에서 휴식·휴일 규제로 바뀌어야”
-당장 실행은 아니어도 주 4일제, 워라밸을 향해 가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우리 사회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디지털화로 1인당 부가가치가 폭등하면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해진다. 고용은 늘지 않을 것이다. 산업 대전환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노동도 대전환기다. 그렇다면 근로시간을 규제하고 삶의 질을 올리는 쪽으로 갈 것인가, 근로시간 규제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규제 방향을 어떻게 바꾸나.
“지금은 몇 시간 일할 수 있게 규제한다. 그게 아니라 얼마간 일하면 휴식을 취하도록, 휴일은 꼭 며칠을 지키도록 규율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대기업·공공기관에 흔히 있는 겸직 금지도 바뀔 수밖에 없다. 과거엔 평생 한 직장을 다녔지만 외환위기(IMF) 이후 직장을 옮겨다니는 시대가 됐고, 앞으론 여러 직업을 갖고 소득을 얻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도 젊은 층에선 유튜버가 급속히 늘고 돈도 많이 버는데 겸직 금지가 의미가 있을까. 그러면 주 4일제가 도입돼도 장시간 노동을 막을 수 없다. 노동시간 총량 규제에서 벗어나 휴식·휴일을 규율해야 한다. 프랑스 노동법이 연속 몇 시간 일하면 얼마간 휴식을 취하라는 규제를 담고 있다.”
-그러면 직장 기준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별로 노동시간을 측정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다. 자기 측정 방식이 될 것이다. 과거 한 회사에서 주던 퇴직금 제도가 회사를 옮겨도 퇴직연금을 축적할 수 있는 제도로 바뀌었듯이 근로시간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디지털 세상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부는 관련 법을 고민해야 한다. 측정 기기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휴식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매기는 식으로 제도화하고, 노동자 교육을 하고 캠페인을 벌이면 인식과 문화가 바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의 로드맵은 어떻게 짜야 할까.
“스페인처럼 주 4일제 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실험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몇 월 몇 일 전체가 다 하는 방식은 어렵다고 판단한다. 법으로 강제하면 주 5일제보다 오히려 반발이 많을 것이다. 사업자에게 노동비용이 올라가는 것도 문제지만 인플레이션 등으로 거시경제를 자극해 경제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주 4일제보다는 근로시간 규제를 유연하게 하면서 휴식을 의무화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먼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주 5일제 때는 논쟁이 많았고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많이 거치며 3년 정도 지나 국민 여론도 찬성 쪽으로 진전했다. 주 52시간 때는 특례 업종을 줄이는 것 등에 대해 토론은 있었지만 전격 합의 후 홍보가 부족했고 탄력근로제도 뒤늦게 법이 통과됐다. 3년쯤 공론화하고 천천히 도입해야 연착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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