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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남자들에게 요리를 권함

입력
2021.11.14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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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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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요즘 요리학원 다녀. 그것도 해보니까 재미있네."

선배가 수줍게 웃으며 고백한다. 젊은 시절부터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이제 정년을 몇 년 남겨두지 않았는데 새삼스럽게 요리의 재미에 푹 빠졌단다. 맙소사, 평생 요리하고 담 쌓고 살 사람 같았건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내가 가족들 식사를 전담하겠다고 나선 2000년대 초만 해도 부엌은 여성의 전유물이고 남성은 그 근처에 가는 것도 금기처럼 여겼는데, 요즘엔 TV에서도 주변에서도 요리하는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50대 중반의 C는 요리학원에 다니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SNS에 올리고 40대 후반의 B는 매일 아침 아내와 아들을 위해 만든 음식을 공개한다. 매년 2월이면 함께 모여 장을 담그는 모임이 있는데 나를 포함해 모두가 50대 후반에서 60대 남성들이다. 우리는 그 모임에 '된장구락부'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나이 든 남자를 만날 때마다 요리를 배워두라고 권한다. 어제도 친구 하나가 세상을 떠났지만, 60 나이가 넘으면 하루 앞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동안 가족 밥상을 책임지던 사람이 아프거나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다. 음식점도 많고 밀키트도 크게 발달했다지만, 장담컨대, 평생 집밥에 익숙해진 노년의 미각이 외식만으로 만족할 리는 없다. 배우자가 몸이 불편하다면 그간의 노고에 보답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아픈 아내를 위해 정성껏 죽을 끓여내는 남편은 아름답다.

요리는 노년의 취미생활로도 적격이다. "신기해요. 어째서 남자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생활이 한없이 엉망이 되는 걸까요." 얼마 전 SNS에서 본 글이다. 사실이다. 남자는 은퇴 후 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쉽다. 별다른 소일거리 없이 빈둥거리다 보면 이상하게 몸도 쉽게 아프고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만다. 예전에는 불쌍해보였겠지만 요즘엔 욕먹기 딱 좋다. 요리는 종합예술이다.

예를 들어, 간단하다는 감자조림을 해보자. 필러로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간장과 물엿을 넣고 조리면 그만이지만, 조금 경험이 쌓이면, 맛과 식감, 색감까지 챙기게 된다. 감자를 물에 담가 전분을 빼고 전자레인지에 3~5분 돌리면 조리시간도 줄고 식감도 좋아진다. 고추장을 조금 풀면 색이 예쁘고 불을 끄기 전 물엿을 보태면 윤기도 좋아진다. 요리는 그만큼 응용의 폭이 무궁무진하다. 격한 움직임 없이 머리를 많이 써야 하기에 당연히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크고 가족의 행복, 평화에도 이바지한다.

선배는 부인이 아픈 게 계기가 되었다. 뭐든 해주고 싶은데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단다.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 여전히 밥을 얻어먹지만 이따금 학원에서 배운 요리를 해주면 가족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대학에서는 그가 선배였지만 요리만큼은 내가 한참 선배가 아닌가.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선배, 요리학원 끝나면 동영상으로 해봐요. 집에서 가능한 요리가 무궁무진한데 그걸 다 학원에서 배울 수는 없죠. 인터넷 동영상엔 없는 요리가 없답니다. 초보에서 고급까지 난이도를 선택할 수도 있고요. 학원에서 배운 다음에 집에서 해주는 것도 좋지만, 먹고 싶은 음식, 먹고 싶어 하는 요리에 도전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어요. 요리는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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