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정영수 '내일의 연인들'
편집자주
※ 한국 문학의 가장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4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우리가 똑같이 믿지 않는 것이 있다. 자신의 삶이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을 것이라는 바람.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오늘이 어제만큼만 별일 없기를 기대할 뿐이다.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는 관계에서도 별일 없이 산다는 게 가장 최선의 인사이듯이,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그리 좋지도 않았던 어제와 어제를 시침질하듯 그저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와중에 정영수 소설의 등장이 꽤나 반가웠다. 등단작부터 첫 소설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이 그려낸 세계의 풍경과 인간의 내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대변해주는 듯이 읽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너무 소란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 현실의 한 부분을 조명해서 보여주듯이 정영수의 소설은 매번 친근하고도 낯선 느낌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바로 나, 혹은 나의 친구가 겪었음직한 일상이지만 오롯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딱 한 부분’이 있어서 안심하고 웃을 수 있는 현실이 정영수 소설이 그려내는 소설적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차갑고 뜨거운 감정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 웃으면서 안도하고 돌아서서 며칠은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긴 숨을 내쉬게 되는 이야기가 그간 정영수 소설이었다.
'내일의 연인들'은 그런 지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여기에 묶인 여덟 편의 단편들은 표제가 암시하듯이 ‘사랑’과 ‘관계’에 천착한 삶의 장면들을 그린다. 정영수 소설의 화자들은 더욱더 목소리와 눈빛과 입매에 힘을 빼고 자신이 처한 관계를 바라본다. 그로써 정영수의 소설이 담아내는 사랑하는 관계, 그 관계가 이르고 도달하려는 세계의 경계는 더욱 유연해지고 더 넓어진다. 그것이 이 삶에 대한 여유에서 비롯한 일종의 자발적인 이완이 아니라,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없음을 예감한 데서 초래된 긴장의 효과라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사랑하는 마음이란 게 연인이라는 특정한 대상을 통해서 발휘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세세하게 변화시키는 물질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떠나고 난 다음에도 나는 계속 그와 어울리는 상태를 상상하고 자신을 반성하며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 번 생긴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사랑만이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도 별일 아니라는 듯 적는 이 시대의 소설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저마다 사랑을 만났거나 만나고 있거나 만날 테지만, 만남은 결국 헤어짐을 예비함으로써 하나의 사건이 되므로. 그렇게 우리는 똑같이 ‘내일의 연인들’을 믿을 수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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