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
‘우연히, 웨스 앤더슨(Accidentally Wes Anderson)’이라는 책이 있다. 사람들이 여행을 갔다가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처럼 찍은 사진들을 모았다.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 심지어 남극까지 9개 지역으로 분류해 사진들을 소개해 놓았다. 좌우대칭을 절묘하게 이뤘거나, 파스텔 색조가 두드러지거나, 구도가 완벽하다 싶은 사진들이다. 여기에 하나 더. 사진 속 풍경은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하고 은근히 따스하다. 앤더슨 영화의 특징들이다. 책은 앤더슨 영화 속 장면들이 관객들 뇌리에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지 보여준다. 18일 개봉하는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도 앤더슨 감독은 자신의 인장을 뚜렷이 드러낸다.
영화 속 시공간은 1970년대 프랑스 가상의 도시 블라제다. 미국인 아서(빌 머리)는 이곳에서 창간인 겸 편집장으로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를 발간하고 있다. 그는 소수 정예 기자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고품질 기사 덕분에 발행부수는 50만 부다. 어느 날 아서가 숨을 거두며 그의 유언에 따라 잡지는 폐간을 눈앞에 둔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기자들은 아서의 삶을 기리는 동시에 마지막 호를 위해 특별한 기사 4개를 준비한다.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기사를 바탕으로 연관성 없는 이야기 4개를 펼쳐낸다. 첫 번째 이야기는 허브세인트 기자(오언 윌슨)가 자전거로 블라제를 탐방하며 도시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는 내용을 담는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미치광이 살인마 화가 모세(베니시오 델 토로)를 둘러싼 사연이다. 세 번째는 학생들 시위를 둘러싼 뒷이야기, 네 번째는 경찰서 유명 요리사와 납치 사건을 각각 다룬다. 상상력으로 빚어낸 네 이야기는 기이하면서 발랄하고 유쾌하다.
영화는 활자매체 시대에 대한 추억을 스크린에 새긴다. 음식 담당 기자 로이벅(제프리 라이트)이 하는 말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응축한다. “나는 ‘사진 같은 기억(Photographic Memory)’보다 ‘활자 같은 기억(Typographic Memory)’이 더 강하다.” 활자로 상상하고, 활자로 기록하며 풍성한 정신 세계를 일궜던 20세기를 돌아보는 말이다. 앤더슨 감독은 장면 곳곳에 의도적으로 영문자를 배치해 문자의 아름다움을 표시한다. 활자매체 종사자의 장인 정신에 대한 헌사다.
앤더슨 영화가 대체로 그렇듯 ‘프렌치 디스패치’는 왁자지껄한 소동극을 전개한다. 그 속엔 굵고 짧은 유머가 담겨 있고,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섞여 있다. 앤더슨 감독의 짝패인 음악감독 알렉산더 데스플라의 선율이 쓸쓸하고도 흥겨운 정서를 여전히 고조시키기도 한다. 티모테 샬라메와 프랜시스 맥도먼드, 레아 세이두, 틸다 스윈턴, 에드리언 브로디, 엘리자베스 모스 등 출연진만으로도 눈이 호강한다. 무엇보다 장면 하나하나에 스민 장인 정신이 도드라진다. 서사와는 별개로 그저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영화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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