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20대의 황예진씨는 남자친구에 의해 죽었다. 남자친구는 그녀를 수차례 벽에 밀쳤고, 쓰러진 그녀를 오피스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로,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로비로 옮겼다. 그는 짐승 시체를 끌 듯이 그녀를 질질 끌고 다니다가 경찰에 신고하였다.
7월에 발생한 이 사건은 11월 현재 재판 중이다. 살인사건이다. 검찰은 상해치사로 보았고 언론은 아직도 이를 데이트 폭력사건이라 칭한다. 나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살인사건으로 명명하지 않았던 언론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이 글에서 사건에 적용되어야만 하는 죄명을 논하고 싶지 않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고 검찰의 공소장변경 그리고 법원의 합리적 판단에 희망을 걸고 싶다. 그리고 오늘 말하고 싶은 내용은 이 죄명에 대한 논란, 가해자에게 내려질 합리적 처벌의 수위가 아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CCTV에 집중했다. 맞아서 정신을 잃고 고개가 젖혀지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 고개가 꺾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 CCTV 화면을 통해 경찰은 가해 행위를 수사하고, 가족은 죽어가는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 법조인은 CCTV를 보면서 미필적 고의와 부작위 살인의 흔적을 찾겠지만 나는 화면 속의 고요함을 보았다. 화면에서는 가해자가 그녀를 때리고, 그녀가 쓰러진다. 가해자가 그녀를 질질 끌고 다닌다. 그러나 화면에는 로비에서 이들을 목격하는 경비원도 없었고,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다가 달려온 관리인도 없었으며, 오피스텔 건물에 오고가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저 고요하게 폭행하는 가해자와 소리 없이 죽어가는 피해자만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계속 '사람 한 명만 나타나다오!'라고 바랐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최소한 그 시간, 그 공간에는 경비원도 없었던 것이고, CCTV는 설치하였지만 아무도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다툼소리를 들었던 사람도 없었기에 신고를 해주는 그 누구도 없었다. 사람은 없고 기계만 있었던 그 공간에서의 싸움은 죽음으로 결론이 났다. 그 시간, 그 공간에 사람이 나타났으면 어땠을까? 그녀는 구타는 당했을지언정 분명 살아는 있을 수 있었다.
범죄에 대한 예방 전략을 시민들 혹은 경찰과 이야기할 때마다 흔히 듣게 되는 요청은 CCTV 확충이다. 이상한 사람이 있으니, 불안하니 CCTV를 확충해 달라는 것이다. 어떠한 마음으로 CCTV 설치를 요구하는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범죄 예방 정책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한 일반 시민의 마음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CCTV 앞에서 범죄를 멈출 것인가? 많은 범죄자들을 만나보았다. 물론 CCTV가 많아서 범죄를 하면 걸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범죄자들도 있었지만 흥분해서 즉흥적으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CCTV를 신경이나 쓰겠는가? 더군다나 그 행위가 범죄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 CCTV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대인 범죄에 있어 범죄가 완성되지 않은 미수 범죄의 경우 왜 미수에 그치게 되었는지를 범죄자들에게 직접 묻고 판결문을 분석한 적이 있다. 대다수의 대인 범죄에서 미수범죄는 CCTV가 있어서가 아닌 '범행 시 사람이 나타나서' 범행이 중단되었다.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은 범죄자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누군가가 보았다는 것이고, 신고할 것이고, 잡힌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나 CCTV는 그저 고요하게 범죄를 녹화하고 있을 뿐이다.
CCTV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나쁜 범죄자를 찾는 데는 정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CCTV는 그녀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한 사람만 나타났더라도, 이 사건은 죽음과 연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범죄예방 전략도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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