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카페 한 구석, 두 남자는 자못 비장했다. "이제 누구 뽑냐." "윤석열? 이재명? 둘 다 싫은데."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홍준표 의원 지지자들의 풀 죽은 대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로 마주쳤던 '이대남(20대 남성)'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겠구나! 쓸쓸히 자리를 뜨려는 두 사람을 붙잡아 세웠다.
'뽑을 사람 없다'던 이번 대선에서 가장 의아했던 건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 바람이었다. 비호감의 대명사였던 '막말 준표'는 어떻게 2030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 걸까. 이준석처럼 또래도 아니고, '내로남불'에 분노했다면 반문(반문재인) 구심점 윤석열로 뭉치면 됐을 일. '안티 페미니즘'의 선봉 유승민도 있었다. 그에 비해 홍준표의 전투력은 약했다. '대선 재수생' 타이틀이 무색하게 공약은 거칠고 투박했다.
그럼에도 선택당했다. 왜? "우리 말에 그나마 귀 기울여주니까요." "솔직한 면이 기성 정치인과 달라서 좋았죠." 유튜브 활동으로 다져진 꾸밈 없는 친숙함이 소통의 노력으로 다가왔다는 설명. 어떤 정치공학적 해석보다 싱겁지만, 민심을 귓등으로 듣는 한국 정치에 신물 난 입장에선 매력일 수 있겠다 싶었다.
정작 '준표형'을 벤치마킹하겠다는 후발주자들은 엉뚱한 데를 헤매고 있다. 남초(남성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의 극단적 여론이 전부인 양, 역차별 때문에 남성이 핍박받았다는 글을 퍼 나르고(이재명 후보),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에 핏대를 세우며(윤석열 후보), 여성가족부 개편엔 나란히 목청을 높이는 중이다.
양성평등을 위해서라고 포장하지만, 엄존하는 여성의 성차별에 눈감았다는 지적에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이러니 "여성의 삶에 공감 못 하는 두 아재 후보"(류호정 의원)란 핀잔을 들을 수밖에.
당사자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은데요." '이대남이 살기 힘든 게 진짜 페미니즘 때문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 "미래가 막막한 건 모든 청년이 마찬가지니까요."
이들은 알고 있었다. 여가부에서 여성의 이름을 뺀다고, 여성할당제를 없애는 것만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고, 집 한 채 장만하는 희망은 여성을 끌어내린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아재 후보'들은 애써 모른 척 중이다. 한쪽 편만 들어도 남는 장사라는 어리석고도 비겁한 계산법을 굳게 믿으면서. 싸움 붙여 놓고 구경만 하고 있으니, 정책은 속 빈 강정. '민지(MZ세대)'만 찾아대고, 속 보이는 세금 정치로 퉁 치려는 게 고작이다.
청년들이 싸워야 할 상대는 남자, 여자가 아니다. 진짜 적은 따로 있다. 청년의 절규를 이용하고, 청년의 고통을 유예시키는 기득권 세력. 586세대의 권력 독점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한 교수의 제안(이철승의 '쌀, 재난, 국가')처럼, '연공제 타파'에 힘을 보태는 건 어떨까. 불평등, 공정 문제 해결은 차라리 그 길이 빠를 수 있다.
페미니즘은 죄가 없다. 남성의 권력을 빼앗자는 것도, 여성이 우월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하자는 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나. 그러니 애먼 화풀이나, 얄팍한 표 장사에 그만 동원하고 이제 놓아주자. 청년을 위한 나라를 진정 만들고자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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