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22일
순치 받아들이고 일본군 복무 등 오점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바람이 차다… 내 땅이구나" 누워서 고국에 돌아온 영친왕 이은 씨는 비행기에서 내리자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 - 1963년 11월 23일자 한국일보 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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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22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이 고국을 떠난 지 56년 만에 환국한다. 당시 한국일보 기사를 살펴보면 이은은 뇌출혈 상태로 병상에 누운 채 귀국해 구급차를 타고 곧바로 성모병원에 입원한다. 이 씨 환영객 중에는 낙선재에 있던 상궁들도 있었으면 큰절로 그를 맞았다.
이은은 고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순종의 이복동생이자 덕혜옹주의 이복오빠이다. 아들이 없었던 순종이 황제에 즉위한 1907년에 열 살의 나이에 황태자로 책봉됐다. 그리고 4개월 뒤 이토 히로부미가 신학문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의 일본 유학을 강행한다. 사실상 일본의 볼모였다.
이은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 황제가 이왕으로 격하되면서 이왕세자로 격하됐다. 1920년에는 일본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와 결혼한다. 1926년에 순종이 승하하자 왕위를 계승하여 제2대 창덕궁 이왕이 됐다.
이은은 일본 황실로부터 귀족 대우를 받으며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제1항공군사령관(육군 중장) 지위에까지 올랐고 물질적으로 일본 황족보다도 풍족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1945년 일본 패망 직후 신헌법 시행으로 이왕 내외는 왕족에서 평민으로 전락한다. 해방된 조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해 이 씨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국적 또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인정하지 않아 무국적자로 지내게 된다. 환국이 어려워지고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1961년 여름부터는 뇌혈전증과 뇌연화증 등 병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그는 광복 18년 뒤인 1963년이 돼서야 악화한 병세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7년간 실어증과 뇌출혈로 투병하다 1970년 5월 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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