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비는 감액, 표 되는 '병사 면도기' 예산은 늘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2년도 국방예산이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4,400억 원이나 깎였다. 역대 최대 규모의 삭감 폭이다. 특히 무기체계 구입 등 군사력 증강에 쓰이는 방위력개선비는 전년 대비 총액 자체가 줄어 처음으로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의 자주국방 기조가 빛이 바랬다는 평가와 함께 대선을 앞둔 여야가 ‘표심 잡기’ 공약에 쓸 실탄을 확보하려 국방비를 희생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관계 '훈풍' 때도 늘렸던 군사비, 첫 마이너스
17일 ‘국방예산안 예비심사보고서’에 따르면 국회 국방위원회는 전날 열린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국방예산을 국방부가 애초 편성한 55조2,277억 원에서 4,464억 원 삭감한 54조7,813억 원으로 의결했다. 해당 예산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내달 초 국회 본회의에서 확정된다.
세부 항목을 보면, 국방위 심사 과정에서 장병 복지비, 인건비, 시설비 등 전력운영비가 1,603억 원 늘어난 반면, 군사력 확충에 소요되는 방위력개선비는 6,067억 원 감액돼 결과적으로 4,464억 원이 줄었다.
군 당국은 자주국방을 강조한 현 정부에서 ‘군사비’인 방위력개선비가 대폭 깎인 사실에 크게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국회는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안보 현실을 반영했다”면서 오히려 국방부가 올린 원안에 404억 원을 더 얹어 주며 힘을 실었다.
예산이 깎인 대표 사업은 △경항공모함(67억 원) △조기경보기(항공통제기) 추가 도입(3,283억 원) △대형공격헬기(154억 원) △F-35A 전투기 성능개량(200억 원) 등이다. 국회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거나 사업 추진 단계별로 매년 지급되는 연부액이 과다 책정됐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육군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도가 “예산이 이렇게 감소하면 전력화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소수의견을 냈을 뿐이다.
국회가 재조정한 방위력개선비 16조7,298억 원은 올해(16조9,964억 원)와 비교해도 2,700억 원 가까이 삭감된 수치다. 4ㆍ27 판문점선언, 9ㆍ19 군사합의 등 한반도에 봄기운이 완연했던 2018년, 2019년에도 증가한 군사비가 처음으로 순감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사력 관련 예산이 원안보다 이렇게 많이 줄어든 것은 전례가 없다”며 “삭감된 액수만큼 다른 분야 예산을 더 줘 전체 금액을 맞추는 게 관례인데, 이번엔 감소 폭이 워낙 커 확정안에서도 총액 유지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삭감 앞장선 與… 재난지원금 재원?
일각에선 여야가 대선 공약에 필요한 선심성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국방비를 제쳐 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국방위가 군사비는 6,000억 원 넘게 깎으면서도 득표에 도움이 되는 장병 복지비는 늘린 게 단적인 예다. 장병 선택권을 넓히는 취지에서 현물로 지급하던 면도기와 면도날을 현금으로 주기로 하면서 관련 예산을 112억5,600만 원 증액시켰다. 물론 열악한 장병 복지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시급하지만, 형평성에 어긋나는 예산 배분은 순수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부의 자주국방 기조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군사비를 깎는 데 앞장서 대선용 예산 편성이란 의구심을 더하고 있다. 국방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민주당 4명, 국민의힘 3명으로 구성돼 여당 동의 없이 대폭 삭감은 불가능한 구조다. 여권 국방위 관계자는 “국방예산을 줄여 이재명 대선후보가 제안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쓰려 한다는 우려가 내부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국방위원은 “현 정부에서 국방예산이 크게 증가한 점을 감안해 사업의 적절성과 시급성을 따져 엄격히 심사한 것”이라며 “재난지원금으로 전용하려 했다면 야당이 동의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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