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다가오는 2022년은 한국과 미국이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은 지 14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1882년 조미조약 체결 이후 1888년 상주공관인 주미공사관이 개설되었고, 1903년에는 하와이 이민을 통한 미국 내 한인사회가 형성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중국, 러시아 지역 등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지역으로서, 미국은 시기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문화재보호법 제2조 9항에 따르면 국외소재문화재는 외국에 소재하는 문화재로서 대한민국과 역사·문화적으로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을 말한다. 미국 내 '대한민국과 역사·문화적으로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재외공관과 독립운동 사적지, 이민자 사적지 등을 포함하는 국외사적지는 30여 개소로 파악된다. 이는 주로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지역에 밀집해 있다.
그중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시는 ‘한미 우호의 종(1978년 지정)'과 ‘대한인국민회총회관 기념관(1991년 지정)'을 역사문화기념물(Historic-Cultural Monument)로 지정해 시 당국이 관리하고 있다. 리버사이드시의 경우 ‘파차파 캠프(2017년 지정)'를 역사관심지(Site of Historic Interest)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는 1903년 하와이 이민 이후 한인 1세대가 주로 정착한 지역의 국외사적지가 대한민국 한인동포의 역사인 동시에 미국의 역사로 인정받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2018년 국립공원청의 ‘아시아계 이민 유산 연구사업의 최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외사적지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는 유일하게 국가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등재 가능성이 있는 잠정 자산(Tentative List)으로 포함돼 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정부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향후 미국 내 국외사적지 관리 및 활용 방안 관련 정책 수립 시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는 1920년 7월 5일, 캘리포니아 북부 윌로스에 세워졌다. 이 학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최첨단 비행기 스탠더드 J-1 훈련기 3대를 보유, 2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군사훈련과 영어, 비행술 등을 교육했다. 그 뒤에는 한인 재력가들의 재정적 지원이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는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의 주도 아래 북가주 지역에서 대규모 벼농사를 하던 김종림, 이재수, 신광희 등 한인 재력가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설립되고 운영될 수 있었다.
임시정부 비행학교는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이자 ‘항공 독립운동사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더 나아가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비행기라는 당시 최첨단 기술을 도입했던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미국 국립공원청의 2018년 보고서가 비행학교를 미국 국가역사기념물 등재 잠정목록으로 포함한 것은, 비행학교가 ‘미국의 역사’로 인정받은 것을 의미한다. 미국인 역시 그 역사적 중요성과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는 달리, 백인 위주의 문화유산 보존 정책보다는 이민자들에 대한 우호 정책과 이민자 문화유산에 대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통해 소수인종과 다문화 건축물을 대상으로 하는 바이든 정부에서의 국가역사기념물 및 국가사적지로 등재 가능성은 어느 역대 정부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문화유산은 중요성에 따라 국가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 국가사적등록(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주(州) 사적 등록(State Register of Historic Places), 지역 기념물과 역사지구(Local Landmark and Historic District)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임시정부 비행학교를 국가역사기념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거나 지대한 영향을 준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연관성이 입증 돼야 한다. 미국 내 한인 사회의 민족 유산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비행학교 건물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변형이나 훼손이 있을 경우 지정은 불가능하다.
이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2월부터 5월 사이 미국 현지 건축 복원 전문가인 임종현 박사를 통해 정밀 조사를 세 차례 진행했다. 1924년에 현 위치로 옮겨진 건물이 1920년 임시정부 비행학교로 사용했던 건축물이 맞는지, 현재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1920년 당시 촬영한 유일한 비행학교 사진(마샤 오 기증)과 남가주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행학교 교사(校舍)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마샤 오가 기증한 사진 자료와 남가주대 도서관 소장 사진자료를 통해 비행학교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들 사진은 비행학교 교사의 원형을 입증하는 동시에, 당시 군사 훈련 교육 모습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사진1'은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진으로, ‘미국 가쥬 한인비행대. 노백린 장군 지위(휘)하에’ 라고 쓰여 있다. 사진 속에는 3대의 비행기가 보이는데, 1920년 6월 말에 두 번째 비행기가 도입됐다는 기록이 있어, 시기적으로 6월 말 이후에 촬영한 사진으로 추측된다.
'사진2'의 오른쪽 상단에는 ‘윌로우스 비행가양성소(飛行家養成所)’라고 쓰여 있다. 비행기 3대가 있으며, 비행기 꼬리에는 태극마크가, 옆에는 ‘K.A.C’라고 영문이 쓰여져 있다. ‘K.A.C’는 ‘Korean Aviation Corps’의 약자로 ‘한인비행사양성소’를 뜻한다. 비행기 한 대는 나무로 만든 간이 격납고에 있고, 다른 한 대는 실제 교육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한 대는 창고 같은 곳에서 수리를 받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들 사진을 통해, 필자는 비행학교가 3대의 비행기와 수리 창고, 격납고, 활주로 등을 갖추고 체계적인 비행기 조종훈련을 진행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비행학교는 1920년 폐교된 퀸트학교(Quint School)를 임차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1920년 촬영한 임시정부 비행학교 사진(마샤 오 기증)을 통해 퀸트학교와 비행학교가 동일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퀸트학교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이민 가정의 증가로 그 자녀들을 위한 학교 설립 필요성이 증대하자 1914년에 세워진 학교로, 1919년 잠정 폐교했다가 1924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비행학교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교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교의 건물 구조와 거의 동일하다. 내부에는 1개의 큰 교실이 있다. 외부 지붕은 맞배지붕(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짓는 지붕)으로, 출입구 현관에는 포치 지붕이 나와 있는 모습이다.
'사진 3'과 '사진 4'를 비교해보면, 비행학교 건물의 규모와 지붕 형식, 다락 공간에 설치된 환풍 창 등의 모습이 거의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출입문 전면에 돌출된 지붕 포치는 1920년 당시 삼면이 개방된 형식이었지만, 옮겨진 후 살림집으로 개조되면서 외벽을 추가로 설치, 실내 공간으로 개조됐고 이 과정에서 지붕을 지지하는 좌우 기둥에 있던 장식용 공포의 위치가 변경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5'는 비행학교 학생 14명이 군복을 입고 훈련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오른쪽 옆으로는 학교 건물 한 면이 보인다. 당시에는 옆면에 6개 세로로 된 긴 창이 있었으나, 현재는 4개만 남아 있다. 나머지 2개의 창이 있던 흔적은 건물 내·외부 벽면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는 대한민국 국외사적지로서의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이와 함께 한인 이민사, 독립운동사, 항공의 역사를 상징하는 미국 내 소수인종의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는 미국 역사의 일부로서 포함될 수 있는 충분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향후 미국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외사적지 중 미국 역사보존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 등재를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법적 테두리 내에서 한·미 양국의 공동으로 향유할 수 있는 공유유산(Shared Heritage)으로 적극 보호하고 보존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