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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 난동 현장 떠난 경찰관 "구호 요청하려 했다, 트라우마로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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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 난동 현장 떠난 경찰관 "구호 요청하려 했다, 트라우마로 기억이…"

입력
2021.11.21 17:20
수정
2021.11.21 21:32
8면
0 0

김창룡 경찰청장 공식 사과...경찰서장 직위해제
피해자 가족 만난 경찰 "출동 요청이 최선 생각"
경찰 "구호 요청은 매뉴얼… 소극 대응은 조사 중"
"경찰 어떻게 믿나"… 국민청원 20만 돌파하기도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래층 일가족 3명을 흉기로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는 A씨가 지난 1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미추홀구 인천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래층 일가족 3명을 흉기로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는 A씨가 지난 1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미추홀구 인천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흉기 난동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두고 떠나 비판을 받은 경찰관이 구호 요청을 하기 위해 현장을 벗어났으며, 트라우마로 현장 이탈 직후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21일 경찰이 흉기 난동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 대해 공식 사과하고, 지휘관인 인천 논현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했다. 출동 경찰관을 파면해달라는 청원이 잇따르는 등 들끓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피해자 가족 만난 여경 "사람 살리려 했다"

21일 인천경찰청과 피해자 가족 등에 따르면 인천 논현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A순경은 최근 피해자 가족과 만나 현장을 이탈한 이유 등을 설명했다. A순경과 같은 지구대 소속 B경위는 지난 15일 오후 5시 5분쯤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현장에서 부실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A순경은 당시 빌라 4층 주민 C(48)씨가 빌라 3층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D씨의 목 부위를 흉기로 찌르고, D씨의 20대 딸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현장을 벗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선 C씨가 소란을 피운다는 D씨 가족의 신고를 받고 함께 출동한 B경위가 D씨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D씨 남편은 딸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3층으로 뛰어올라갔으나, 1층에 있던 경찰관 2명은 빌라 공동 현관문이 잠겨 뒤늦게 올라갔다. 그사이 C씨와 몸싸움을 벌인 D씨의 딸과 남편이 흉기에 찔려 다쳤다. 중상을 입은 D씨는 아직까지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A순경은 최근 D씨 가족과 만나 "(범행을) 목격한 순간 구호 요청을 해서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며 "(1층으로 내려가 119에 출동 요청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신고 내용이 '(이웃 남성이) 문을 발로 쿵쿵 찬다'였고 그분(C씨)이 4층에 올라가 계시라는 말에 저항 없이 따라서 우발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생각지 못했다"며 "(당시) 장면이 계속 떠오르면서 트라우마로 남았고 (현장을 이탈한) 그 뒤 기억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40대 남성이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래층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에서 구호 요청을 하기 위해 현장을 벗어난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들.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40대 남성이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래층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에서 구호 요청을 하기 위해 현장을 벗어난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들.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경찰 "구호 요청은 매뉴얼... 소극 대응 조사 중"

경찰은 A순경과 B경위를 대기 발령하고 감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은 A순경이 D씨가 흉기에 찔린 뒤 현장을 이탈해 피해가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범행 당일 낮 12시 50분쯤 "C씨가 소란을 피운다"는 1차 신고를 받고 출동해 경범죄 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혐의로 출석해 조사 받으라는 통보만 한 점에 대해서도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2, 3개월 전 빌라 4층으로 이사온 C씨는 아래층에 사는 D씨 가족과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었으며 이전에도 112에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매뉴얼상 피해자가 위급한 상황에서 구호 요청을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흉기를 든 피의자가 있는 현장을 이탈하거나 반복 신고된 사안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순경이 C씨에게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뺏겼다거나 이미 제압된 상태에서 테이저건을 쐈다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송민헌 인천경찰청장은 비난 여론이 커지자 지난 18일 공식 사과하고 부실 대응 의혹을 받는 경찰관 2명에 대해 엄중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 청장도 이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소명인데도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한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5시 인천 논현경찰서장을 직위 해제 조치하고 신속한 후속 인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파면' 청원 잇따라... 피해자 가족 '엄중 처벌' 청원 답변 요건 갖춰

경찰 공식 사과와 감찰 조사 착수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대한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부실 대응 의혹을 받는 경찰관을 파면해야 한다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피해자를 버리고 도망 간 경찰 파면 요구'라는 제목의 청원을 통해 "경찰을 어떻게 믿나"라며 "이젠 출동 경찰관이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하나"라고 적었다. 이 청원은 이날 오후 4시 30분 현재 2만3,7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이밖에 '인천 층간소음 상해사건을 담당한 현장 경찰관 2명과 망언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관의 파면을 요청한다' '인천 빌라 흉기 난동 사건 때 달아난 여경의 파면과 여경들의 체력기준 강화를 청원한다' 등 글에도 각각 7,000여 명과 4,200여 명이 동의했다.

피해자 가족도 엄벌을 촉구했다. 피해자 가족은 앞서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 경찰 대응 문제로 인천 논현경찰서를 고발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을 통해 "경찰은 사건을 만들고 키웠고 회유로 덮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가족은 "경찰의 직무유기, 살인미수 방조, 회유 등 경찰이 범인이라고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경찰 내부적인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경찰 지휘체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올라온 이 청원은 이날 오후 9시 현재 20만700여 명의 동의를 받아 국민청원 답변요건(30일 동안 20만명 이상 동의)을 갖췄다. 이 청원은 앞서 사전동의 100명을 넘어 비공개 됐다가 관리자 검토를 거쳐 이날 공개됐다.

송민헌 인천경찰청장 사과문. 인천경찰청 제공

송민헌 인천경찰청장 사과문. 인천경찰청 제공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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