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문화 해외서 폭발적 인기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대상 수상, 한국 드라마 '지옥' 공개 하루 뒤 넷플릭스 전 세계 1위, 마동석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북미 흥행 1위. 최근 일주일 동안 세계 시장에서 일군 한국 대중문화 관련 성과다.
'한류 수출국' 된 북미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강력해진 영향력은 5년 전과 비교해 180도 달라진 K콘텐츠 소비 풍경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에서 인기를 끈 뒤 짧게는 몇 달 시간이 지나 세계 시장으로 유행이 옮겨붙던 이전 한류와 달리, 이젠 북미와 유럽에서 K콘텐츠를 기다렸다는 듯 공개 동시에 소비되며 돌풍을 이끌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음악,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대표 K콘텐츠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결과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동호회를 만들어 한류를 즐기는 해외 소비자는 지난해 기준 2억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 강해진 한류는 세계인의 일상까지 바꾸고 있다.
대학 단골 토론소재 된 BTS
올여름 결혼한 신혼인 패트릭·니나 플루와 부부는 지난달 29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오징어 게임' 콘셉트로 웨딩 사진 촬영을 다시 했다. 부부가 본보에 이메일로 보낸 결혼 기념 촬영 사진엔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달고나 뽑기 게임을 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명함을 따로 만들어 하객을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만난 패트릭 플루와씨는 "'오징어 게임'의 광팬이라 아내가 나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준 것"이라며 "결혼식날 마침 아내가 주문한 드레스가 오지 않아 원하는 드레스를 입지 못했는데, 뒤늦게 온 드레스를 입고 '오징어 게임' 웨딩 촬영을 했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이 주도한 K팝 열풍은 미국 대학의 단골 토론 소재가 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샘 리처드 교수는 인종과 문화에 대한 사회학 관련 강의에서 "세계화되고 싶다면,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면 방탄소년단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900여 명이 모인 대형강의에서 마스크를 쓴 수강생 제이나씨 등은 K콘텐츠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콘텐츠는 섹스 얘기가 너무 많지만, K콘텐츠는 그렇지 않죠. 물론 K팝 아이돌그룹도 섹시한 걸 드러내지만, 서구 아티스트들처럼 노골적으로 과시하진 않아요." "한국 드라마가 미래의 할리우드가 될 거라 생각해요."
52년 된 '미국판 뽀뽀뽀'에 한국계 미국인 캐릭터 첫 등장
삶의 깊숙한 곳까지 K콘텐츠가 파고들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 공영방송 PBS가 제작하는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엔 한국계 미국인으로 일곱 살 '지영'이 추수감사절인 25일부터 등장한다. 52년 역사의 이 프로그램에서 아시아계 캐릭터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아시아계 하면 그간 서양에선 일본과 중국을 먼저 떠올리곤 했는데, 미국 미래 세대의 주요 콘텐츠에 한국계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것은 한류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시아인=한국인 연관성 강화" 한류로 높아진 인식
리처드 교수는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세서미 스트리트'에 지영이 등장하는 건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고, 미국인의 '아시아인=한국인'이란 연관성이 강화됐다는 뜻으로 매우 큰 변화"라고 진단했다. "중국인의 등장은 중국과 미국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더 큰 반발을 살 수 있고, (대중문화에서) 일본은 이제 한국보다 관심에서 뒤처져"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레이스 카오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미디어 시장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적극 수용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오징어 게임' 등의 인기로 한류가 거세 '세서미 스트리트'에 한국계 미국인 캐릭터를 추가한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미국인들이 K팝과 드라마 등을 지속적으로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OTT에서 사용하고, 그 알고리즘으로 인한 추천이 더욱 퍼지면서 K콘텐츠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OTT·정치적 올바름·북미 소재 부족, 한류의 기회
한류의 위상은 ①OTT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접근성 강화와 ②북미 콘텐츠 산업의 스타일적 쇄신 지연 및 소재적 부족 ③장기간에 걸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문화를 통한 동아시아 문화의 심리적 장벽 완화 등을 통해 한 단계 올라갔다. 이 흐름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평가도 수직상승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문화계 거물"이라고, 영국 FT타임스는 "눈부실 정도로 독창적인 한국 콘텐츠가 세계를 매혹시켰다"고 최근 잇따라 지면을 털어 한류의 달라진 위상을 보도했다. 10년 전 K팝 열풍을 "제작사에 의해 길러진 소년 소녀들"이라고 비판(프랑스 일간 르몽드)한 것을 고려하면 확 달라진 분위기다.
그간 한국 제작사는 넷플릭스 등 세계 OTT와 해외 대형 음악 기획사의 하청 기지 역을 해 제대로 수익을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젠 산업적으로도 북미에서 점점 주도권을 쥐어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CJ ENM은 영화 '라라랜드' 제작에 참여한 할리우드 제작사 '엔데버 콘텐트'를 7억7,500만 달러(약 9,250억 원)를 주고 인수한다고 19일 밝혔고, 하이브는 4월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속한 미국의 이타카 홀딩스를 10억5000만 달러(약 1조1,850억 원)에 흡수했다. 미국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한국 기업에 인수되기는 이례적이다. 주성호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비즈니스센터장은 "미국 대중문화업계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한국의 콘텐츠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고, 한국 대중문화산업은 제작비 수급과 글로벌 OTT와의 협상력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며 "하지만 산업적으로는 아직 주류라고 보기 어려워 더 많은 인재와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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