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비난받는 군사 독재자가 숨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소식을 긴급 타전한 해외 언론의 기사 제목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단어는 ‘독재자’ 혹은 ‘학살자’다. 19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철권 통치로 국민을 억압한 전씨에 대한 싸늘한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전씨는 쿠데타로 집권해 1980년대 대부분을 통치했으며 장갑차를 투입해 민주화 시위대 수백 명을 진압했다”며 전씨 사망 사실을 전했다. 이어 “한국 국민에게 전씨 이름은 군부 독재와 동의어”라는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의 말을 소개했다. 아울러 전씨가 1961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5·16 쿠데타에 가담했고,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 피살 후엔 직접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했으며, 친구이자 장군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후계자로 뽑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한국의 장성 출신 역대 대통령 3인 중 마지막으로 사망했다”고 촌평했다.
신문은 1980년 전씨가 저지른 5·18 광주 학살과 인권유린을 당시 미국 행정부가 방조했다는 점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주 학살은 한국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 토대를 형성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미국이 한국인의 고통을 무시했다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수십 년간 한국에선 반미주의가 팽배했다”는 전직 미 외교관의 진단을 보탰다.
AP통신도 이날 “쿠데타로 집권하고 민주화 시위를 잔혹하게 탄압했으며 악행으로 감옥에 갔던 군사 독재자 전두환이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AP는 “전씨가 집권했던 시기 민주화운동으로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투옥됐다”며 “수년간 권위주의 통치 이후 대중의 압력에 밀려 (1987년) 대통령 직선제와 자유 선거를 허용했다”고 소개했다. 또 “1988년 퇴임한 뒤 2년간 사찰로 피신했고, 부패, 내란, 반역 혐의로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1997년 국민 화해 차원에서 사면됐다”고 부연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전씨를 ‘군부 독재자’라고 지칭하며 “전씨 집권기 특징은 잔혹성과 정치적 탄압”이라고 평했다. 특히 광주 학살과 관련해 전씨가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짚었다. 통신은 “전씨는 광주 학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을 받으며 그는 ‘정치적 위기에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쿠데타가 필요했다’고 주장했고, 광주에 군대를 투입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법정에서 ‘만약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똑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는 전씨가 재임 시절 조성한 불법 비자금에 대한 추징금을 내지 않아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는 사실도 빠뜨리지 않았다. 2003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자녀들은 미국 호화 빌라를 소유하고 있었고, 2013년에는 가족이 추징금 완납을 약속했으면서도 여전히 절반밖에 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전씨가 최근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다음 주 항소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AFP통신도 경제 성장과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성공 등 일부 성과를 언급하면서도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다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의해 (사실상) 쫓겨났으며 군대에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명령함으로써 ‘광주의 학살자’라는 오명을 얻었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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