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숨지고도 오후 3시 돼서야 운구
장세동·이양우 등 측근들 자택 찾아 조문
시민들, 5·18 진압 등 사과 없는 죽음 비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 주변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전씨가 숨진 시간은 오전 8시 45분쯤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절차를 밟느라 시신은 오후 3시 15분쯤에야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이송됐다. 취재진 70여 명이 사저 앞에 모여든 가운데, 경찰과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방역 및 치안 문제로 사저 주변을 드나들었다.
"평소 화장해달라고 유언 남겨"
사저 안에서 이순자 여사와 장남 재국씨, 차남 재용씨가 고인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생전 고인과 가까웠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 이양우 변호사, 정주교 변호사, 오일랑 전 중령 등이 자택을 찾았다.
전씨가 주도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고명승 전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은 오전 11시 50분쯤 자택에서 나와 "한 어른이 세상을 떠나셔서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씨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오전 사저 앞에서 취재진에게 "(고인이) 이미 회고록에 유서를 남겼고, 평소에도 '나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려라'라고 말했다"면서 "가족들은 그 유언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 전 비서관은 전씨 회고록에서 '통일을 이룬 빛나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 전에 내 생이 끝난다면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서 백골로 남아 그날을 맞고 싶다'는 대목을 낭독하기도 했다.
민 전 비서관은 전씨가 생전 5·18 유혈진압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고인이) 피해자나 유가족에 대해 여러 차례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면서 "다만 이는 대통령이 된 후 여러 조치를 충분히 못 해 유감이었다는 뜻이지, 발포 명령을 했다고 인정하거나 사죄하는 그런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제는 좋았던 시절" vs. "사과했어야"
전씨 사저 인근에서 만난 시민 반응은 엇갈렸다. 사저 옆골목에 산다는 김모(80)씨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서민들은 (전씨가) 그 당시 먹고살게 해줬으니까 다 좋아한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원모(70)씨도 "왜 사과한다는 그 말 한마디를 못 하고 죽었나"라면서도 "광주사태 빼면 잘못한 것 없지 않나. 나라 경제는 그때가 지금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낮 12시쯤에는 한 시민이 사저 앞에서 5·18 무력진압이 전씨 잘못이 아니라는 내용의 신문 인터뷰 기사가 실린 전단지를 뿌리기도 했다.
반면 연희동에 40년간 살았다는 이모(75)씨는 "마지막에 가면서라도 젊은 날 잘못산 것 같다고 한마디라도 했어야 했다"면서 "죄를 너무 많이 지었다. 더 고통받다가 죽었어야 했다"고 고인을 비난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변모(63)씨도 "더 빨리 갔어야 했다"면서 "조금이라도 반성했다면 애도했겠지만, 양심의 가책이 없는 모습을 보여온 터라 인정이 안 된다"고 말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다. 유족과 병원이 구체적 장례 일정을 논의하고 있는데,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삼남 재만씨의 귀국 일정을 고려하면 3일장보다는 장례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씨의 사망 경위에 대해 경찰과 소방당국은 고인이 이날 오전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졌으며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고 했다. 민 전 비서관은 "아침 8시 45분경 화장실 가셨다가 쓰러져 운명했다"면서 "당시 집 안엔 이순자 여사만 계셨는데 갑자기 운명하셨기 때문에 아무런 응급 처치도 못 했다"고 전했다. 낮 12시쯤엔 사망선고와 검시를 담당하는 검안의가 사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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