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훌륭한 외교관으로 불리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패권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열쇠는 핵무기가 아닌 인공지능(AI)'이라 말하며 중국이 AI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밝혔다.
매년 네덜란드에서는 '세계농업 인공지능대회'가 개최된다. 2019년에 열린 제2회 대회에는 한국의 '디지로그'팀이 참가하여 예선 2위, 본선 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팀별로 정해진 기간 내에 모델을 만들어내는 경쟁) 방식의 예선을 거쳐 6개월간 원격으로 유리온실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대결이었다. 결과만 보면 한국 농업의 AI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농업계 실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회의 모든 부분을 원격으로만 컨트롤했기 때문에 다른 요소들보다 알고리즘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알고리즘을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은 주로 AI 분야의 대학교수와 로봇회사 엔지니어가 담당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농업에 각종 ICT(정보통신기술)가 접목되면서 혁신적인 농업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과 새로운 농업혁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생산량의 증대만이 아니라 농업 전후방 산업 전체, 즉 종자 개발부터 재배, 가공, 유통, 소비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의 변혁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농업 기술은 아직도 선진국 수준 대비 75% 정도에 불과하다. AI의 수준도 미국의 80% 정도에 그친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신농업 혁명의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업에 ICT를 접목할 수 있는 융복합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소니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듯이 이제 AI에 적응하지 못하는 농업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농업과 ICT를 융합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농업대학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의 MIT라 불리는 델프트공대에 애그테크 인스티튜트(Agtech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이곳은 농업과 첨단 기술의 접목을 담당하는데, 세계 최고의 농업대학인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 출신들도 AI 기술을 추가로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다.
지금까지의 농업 경쟁력이 시설과 장비, 기술에 달려 있었다면, 앞으로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농업계에서는 AI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농산물 생산과 가공에 AI를 활발하게 적용하는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 농업 현장에는 AI가 활발히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 다양한 시도는 하고 있지만, 전문인력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의료분야에 CT, MRI 등 첨단 기술이 접목되면서 의사의 진단 정확성과 치료 효과 등이 향상된 사례가 있다. 이처럼 농업에도 ICT가 접목되어 농업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농업도 알고 인공지능에도 능한 '농업 AI 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 특히 고연령층 중심의 소농이 대부분인 한국 농업에 디지털 혜택이 제공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앞으로 우리의 경쟁력은 작지만 강한 '디지털 강소농(强小農)'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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