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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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부적절한 비교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23일 전두환 사망 소식에 뜬금없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떠올랐다. 사실 둘의 공통분모는 없다. 사후에도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학살자’ ‘군부 독재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전두환과, 국민 지지 속에 16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뒤 내달 ‘명예로운 퇴임’을 앞둔 메르켈을 한데 묶는 건 어색하다.
그럼에도 메르켈 얘기를 꺼낸 데엔 이유가 있다. 18일 보도된 그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발언은 지금도 머릿속을 맴돈다. “석탄과 원자력에서 점차 벗어나 에너지 전환을 마치는 건 매우 힘든 과제다. 하지만 ‘제대로 한다면’ 그건 해 볼 가치가 있다.” 최근 에너지 대란 속에 프랑스가 친(親)원전으로 돌아선 것과 달리, ‘그래도 탈(脫)원전이 옳다’는 선언이었다. 자신의 종전 결정을 무작정 옹호하는 고집불통 태도라기보단, ‘지도자의 품격’이 느껴졌다. 메르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확립된 맥락 때문이다.
애초 메르켈은 ‘원전친화’ 쪽이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생각을 바꿨다. 노후 원전 가동을 중단한 뒤, 전문가 17명으로 에너지윤리위원회를 꾸렸다. 8주간 100회 이상 회의를 거친 위원회의 ‘원전 폐쇄’ 결론을 메르켈은 주저 없이 수용했다. ‘2022년 원전 완전 폐지’ 법안을 마련하면서 “핵에너지의 위험성은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의 열린 사고와 수용적 리더십을 보여 준 결정적 일화다. 이 같은 인식의 대전환은 결국 ‘생명 존중’의 철학 덕분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10년 후, 메르켈의 로이터 인터뷰는 이를 재확인시켜 줬다. 에너지 위기든, 탄소감축 목표 달성이든, 그는 ‘현실론’을 들어 원전 유턴을 택하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가’라는 고민의 결과를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사실 우리는 ‘남들도 다 한다’ ‘주변 눈치를 봐야 한다’ 등 이유로 숟가락 뒤집듯 말을 바꾸는 지도자를 얼마나 많이 봐 왔나. 또는 체면 때문에, 아니면 독단에 빠져 뜻을 굽히지 않는 리더도 부지기수다. 메르켈은 달랐다. 선거를 통해서였지만 ‘16년 장기집권 총리’인 그의 뒷모습에 “벌써 그립다”는 찬사를 쏟아내는 독일 사회가 부럽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전두환이 숨졌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해 7년간 나라를 주무른 그는 퇴임 후에도 국민을 우롱했다. 군홧발에 희생된 피해자들에겐 사죄 한마디 없이 떠났다. 전두환에 대해선 고인의 명복조차 빌어줄 수 없는 이유다. 이름 석 자 뒤에 ‘전(前) 대통령’과 ‘씨’ 중에서 무엇을 붙일지, ‘서거’ ‘별세’ ‘사망’ 중 어떤 표현을 쓸지 고민하는 것도 부질없다. 혹자는 “역사가 공과를 따질 것”이라고 하나, 틀린 말이다. 역사의 평가는 이미 끝났다.
전두환 사망과 함께 한 대선 후보의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는 망언이 또다시 화제다. 사과하긴 했지만, 국가 지도자를 꿈꾼다면 오히려 ‘정치 잘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쿠데타와 5·18만으로도 어불성설’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전두환 조문과 관련해서도 그는 “전직 대통령이시니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가 번복했다. 이쯤 되면 그냥 ‘철학의 빈곤, 역사의식 부재’인 게 맞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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