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육류 코너에 가면 두 가지에 감탄하게 된다. 우선 내가 소비하는 고기가 살아있는 동물이었다는 흔적을 이렇게 깨끗이 지울 수 있나 하는 것이다. 닭고기는 가슴살, 다리살 등으로 깔끔히 손질되고 비닐랩에 포장되어 밝은 조명 아래 전시되어 있다. 닭머리나 닭발처럼 살아있는 닭을 연상시키는 부위는 찾아볼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가격이다. 지난 주말 요리에 쓸 닭 넓적다리살 1.5㎏을 8,000원 정도에 샀는데, 세 식구가 두 끼 먹을 양을 제법 고급스러운 슈퍼마켓에서 산 가격으로는 여전히 저렴하다.
이런 가격은 비인도적 조건에서 닭을 대량 사육하고 효율적으로 도축하는 시스템이 있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일터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1분에 60마리의 닭을 산 채로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고, 도살기와 털 제거기를 거쳐 나오는 닭을 매서운 속도로 부위별로 나누고 뼈를 발라내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있어 가능하다. 이들은 도살기가 죽이지 못한 닭의 목을 직접 치기도 하고 아직 살아있는 닭이 털 제거기에 들어가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참혹한 도축의 흔적은 동네 슈퍼마켓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이 어느 시골마을에서 저임금 이민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언론인 에얄 프레스는 '더러운 노동'이라는 책에서 미국 사회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들고 위험하며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노동에 의해 굴러 간다고 주장한다. 비인도적 조건의 과밀한 교도소에서 죄수를 관리하는 일, 무인 드론 폭격기 조종, 도축장 노동 등을 그 예로 드는데, 이 노동들은 한결같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사회적 타자와 약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더러운 노동'의 비가시성 덕분에 우리는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고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며 살 수 있고, 그래서 이 비가시성은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도덕적 불평등을 초래한다.
하지만 더러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도덕적 우월감이 의도적 무지와 위선에 기반하고 있음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 모두 그 노동의 수혜자이고 공모자이기 때문이다. 도축장 높은 벽 밖에는 일 년에 100㎏의 고기를 먹어 치우는 미국인의 식욕이 있고,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코발트 광산 이면에는 최신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우리 욕망이 있다. 노동자들이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병에 소변을 보는 아마존 물류센터는 주문 상품을 당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조급증을 충족시켜준다. 아마존 당일 무료 배송의 비밀은 무슨 새로운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고강도 저임금 노동이라는 자본주의의 아주 오래된 기술이다.
팬데믹으로 닫았던 경제가 다시 문을 열면서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고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는 가운데, 기록적인 숫자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대(大)사직'의 시대라고 호들갑이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유리한 노동시장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더 이상 나쁜 일자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내놓고, 나아가 미국 노동자들이 건강하지 못한 일과 삶의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이 기회에 미국 사회가 더러운 노동과의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모색했으면 하는 건 순진한 사회학자만의 바람일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