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바브라크 카르말
근년에는 거의 잊힌 이름이지만, 아프가니스탄 정치인 바브라크 카르말(Babrak Karmal, 1929.1.6~1996.12.3)은 냉전기 '소비에트 꼭두각시'로 불렸고, 지금도 무자헤딘·탈레반 아프간인들에게 '매국노'로 손가락질당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이 냉전과 외세 때문에 잃어버린 가장 아까운 정치인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그는 아프간 군참모총장과 주지사를 지낸 아버지와 달리 군주정 체제의 조국에 거역했다. 카불대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하며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일련의 반정부 활동 때문에 20세 때 체포돼 5년 징역형을 살았다. 복역 후 1년간 군복무 후 입헌군주정 체제로 바뀐 정부의 기획부 장관을 지냈고, 1965년 좌파 아프간인민민주당(PDPA)을 창당했다.
소비에트에 대한 입장 차이로 당이 분열하고, 1973년 군부 쿠데타로 공화정부가 들어서던 시기, 하원의원이던 그는 정치와 이념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부통령으로 추대됐고, 단 2개월 만에 사퇴한 뒤 체코슬로바키아(현 체코) 대사직을 청해 출국했다. 그곳에서 KGB(옛소련 정보기관)에 포섭됐다는 설이 있다.
무자헤딘 내전 중이던 1979년 소비에트가 아프간을 침공했고, 새 대통령으로 카르말을 추대했다. 취임 연설에서 그는 "애국주의의 힘이 적들의 저항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의 아프간은 냉전의 최대 격전지였고 미국과 중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자헤딘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소련군은 3만 명에서 12만 명까지 파병군을 늘렸지만 결국 1986년 철수했다. 내전이 아닌 제3의 해법을 모색하던 카르말을 소련은 반군 진압 의지가 결여된 무능한 집권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소련군 철군 직전 카르말은 대통령 직을 사임했고, 후임 나지불라는 1992년 탈레반에 의해 공개 처형됐다. 냉전 양대 세력과 국내 반군 모두로부터 타매당한 카르말은 퇴임 후 모스크바에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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