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끝> '작곡가의 유언' D 단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작곡가의 유언' D 단조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1년을 반추하기 좋은 계절이다. 클래식 작곡가들은 생의 끝자락에서 삶을 돌아보며 유작을 남겨왔다. 그중에는 D 단조로 쓰인 곡들이 유독 눈에 띈다. 모차르트 레퀴엠이나 브루크너·베토벤 교향곡 9번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한 거장의 인생이 집대성된 걸작들이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이 조성을 "신중하고 엄숙하다"고 묘사했다.
진지하고 회고적인 D 단조
2019년 12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이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우리가 지금까지 다뤄왔던 단조들은 대체로 어둡고 슬픈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D 단조는 그런 울적한 느낌과 조금 다르다. 진지하고, 회고적이다.
장재진 기자(장): 모차르트나 포레는 레퀴엠을 쓰면서 D 단조를 선택했다. 레퀴엠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인데, 슬픔보다는 대체로 안식과 기도를 노래하는 가사들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지: 특히 모차르트 작품의 경우 단조로 작곡된 곡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모차르트의 단조 곡들은 그 자체만으로 특별하고 불가사의한 아우라를 보인다. 레퀴엠뿐만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오페라 '마술피리' 중 가장 유명한 '밤의 여왕의 아리아' 등이 D 단조로 쓰였다.
장: 오스트리아 작곡가 브루크너는 10년에 걸쳐 교향곡 9번을 썼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신앙심을 담아 D 단조로 작곡에 돌입했는데 끝내 마지막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숨졌다. 미완성 교향곡으로 남은 9번은 결국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된 셈이었다.
지: 베토벤 교향곡 9번도 작곡가의 마지막 교향곡이며, D 단조라는 점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9번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만의 남다른 의미다.
장: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합창'이라는 부제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4악장에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성악가와 합창단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교향곡 역사상 최초로 성악이 접목된 작품이다. 지금이야 익숙하다지만 베토벤이 이 곡을 썼던 1800년대 초반만 해도 파격적인 시도였다. 성악 가사는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서 가져온 것인데,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인류애와 이상주의가 들어 있는 작품이다.
지: '합창' 교향곡은 3악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악장이 D 단조로 구성돼 있다. 이 조성의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특히 교향곡 9번은 12월이 되면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연말 레퍼토리다.
장: 자유와 희망을 갈망하고 환희를 외치는 '합창' 교향곡이 작품 주제상 새해를 앞둔 12월과 찰떡궁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환희의 송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에는 팬데믹 영향으로 연말에 '합창'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올해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16일부터 이틀간, KBS교향악단이 24일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
조성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
서양음악에서 조성은 으뜸음을 중심으로 음계가 짜인 형태를 말한다. 24개의 조성은 각기 다른 음계로 인해 각양각색의 음악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지: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24개의 조성을 알아봤다. 이들은 조성 음악을 중심으로 역사가 흘러온 서양음악의 핵심 정체성이다. 클래식 작품의 '혈액형'으로 볼 수 있는 조성을 이해하면, 음악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훨씬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장: 혈액형이 A형인 사람은 흔히 '내성적이고 소심할 것'이라는 통념이 있다. 물론 현실 세계에는 활발한 성격의 A형도 존재한다. 조성도 마찬가지다. 24회 차에 걸쳐 다뤄온 조성의 성격들은 개별 작품에서는 조금씩 다른 분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같은 조성이 모두 같은 음형을 표현한다면 음악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성은 어떤 작품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핵심'을 함축하는 키워드다.
지: 현대에 들어서는 조성을 사용하지 않는 음악도 활발하게 작곡되고 있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성 음악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재진과 지중배의 키노트' 연재가 조성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가이드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동안 연재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지중배 지휘자.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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