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메타버스가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공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인기 래퍼 트래비스 스콧은 게임 플랫폼 '포트나이트'에서 콘서트를 열어 전 세계 1,200만 명의 플레이어가 그의 공연을 즐겼다. 메타버스 안에서 가상의 인간 디지털 휴먼이 명품광고를 찍고, 방탄소년단(BTS)과 고 신해철이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메타버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흥미로운 메타버스 체험 공연 '비비런'이 공연 중이다.
2019년 사전 제작을 시작해 2020년 시범 공연을 거쳐 올해 본공연을 선보인 '비비런'은 고성오광대 탈춤 춤사위에 가상현실(VR) 기술을 결합시킨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환경 파괴로 쓰레기 행성으로 변해버린 미래의 지구가 배경이다. 이곳의 생존자인 비비와 그의 자식 비비런이 환경오염과 재난으로 파괴된 지구에서 생명체를 찾기 위해 바닷속, 쓰레기 숲, 용암 동굴, 북극 등 다양한 곳으로 모험을 떠난다. 비비는 중요무형문화제 제7호인 고성오광대탈춤 넷째 마당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비비런'의 스토리 역시 고성오광대탈춤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이야기와 플롯은 단순하지만 이 작품은 서사보다 이를 감상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관객들은 VR 전용 고글을 쓰고 비비와 비비런이 등장하는 한편의 3D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게 된다. 바로 눈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비비와 비비런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이외에도 이 3D 애니메이션은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비비런'은 관객들이 단순히 3D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비비와 비비런을 응원하면서 북을 치고, 바닥의 눈덩이를 집어던지는 등 단순하나마 극에 참여한다. 가상현실에서 마치 게임을 하듯 극에 동참하게 하는 방식이다. 제4의 벽으로 무대와 객석을 분리시켰던 서구 사실주의 극에 비해 전통극은 무대와 객석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관중들은 무대의 흥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거리를 하는 등 극의 진행을 적극적으로 거든다. 전통극을 모티브로 한 '비비런'은 최근 공연계에서 유행하는 '이머시브(Immersive·관객 참여형)'극 같은 형식을 담아낸다.
영상의 형식으로 관객과 만나는 '비비런'을 굳이 공연의 영역에서 다루는 이유는 이 작품이 라이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참여로 극이 진행되는 방식은 이미 숱한 게임에서 더 세련되게 구현되어 왔다. 그럼에도 '비비런'이 다른 점이라면 영상 속 비비와 비비런 등 등장인물들이 실제 현장에 있는 퍼포머의 움직임을 반영해 움직이고 대화를 한다는 점이다. 퍼포머의 몸에 부착된 모션 캡처 장비를 통해 캐릭터의 움직임이 즉각적으로 가상현실 공간에서 구현된다. 보여지는 방식은 영상물이고 관객 참여 방식은 게임 같지만, 라이브성 때문에 이 작품을 공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무대만 가상현실로 옮기고 배우 대신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비비런'은 명확히 공연이다.
퍼포머로 고성오광대 전수자가 참여하고 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예술인 고성오광대탈춤의 춤사위를 디지털로 보존하면서 단순 보존이 아니라 극의 놀이성을 최대한 활용해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게 했다. 관객 참여적인 요소가 아직은 일차원적이고 극에 긴밀하게 녹아든다기보다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서사가 이용되는 등 아직은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하지만 가장 아날로그적인 공연이 디지털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시도이다.
현재는 '비비런'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야 하지만 무대가 가상현실인 만큼 기술이 고도화된다면 집에서도 VR 고글을 착용하고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국립극장의 'NT Live'와 같은 공연을 생중계하는 방식이 주목을 받았다. '비비런'은 공연 생중계 차원을 넘어서 집 안에서 공연을 라이브로 즐기게 하는 미래 공연을 엿보게 한다. '비비런'은 22일까지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8일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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