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대선이 코앞에 닥치니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다들 죽겠단다. 어느 쪽이든 이번에 이기지 못하면 당장 죽을 것처럼, 아니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다들 열이 받쳐 있다. 후보도 진영도 지지자도 다들 그렇다. 사는 일이 곧 정치라지만 정치라는 게 이렇게 서로에게 욕하고 비아냥거리고 모략질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서로 상대방이 되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 같겠지만 그거야 언제는 그렇지 않았던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할 때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할 때도 나라는 망하지 않았고 나 같은 민초의 삶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선거 이후 뉴스 보기가 조금 싫어졌어도 며칠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그마저 익숙해졌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도 허무할 정도로 쉽게 잦아들었다.
몇 해 전 일이다. 아내가 새벽에 나를 깨우더니 배가 너무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놀라서 동네 병원 응급실에 달려가 진통제를 맞고 이런저런 조사를 하고 CT 촬영까지 마치니 요로결석이란다. 아내는 내내 통증을 호소했다. 진통제를 아무리 맞아도 통증이 전혀 가라앉지 않으니 더 죽을 맛이었으리라. 그런데 해가 뜨고 비뇨기과 병원으로 옮겨 쇄석을 하고 나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 활짝 웃으며 펄펄 날아다닌다. 만약에 대비해 하루 입원해 있으라 해서 수속을 하는데 의사가 그런다.
"사실 티눈보다 못한 병이에요." 요로결석이 어찌 티눈보다 못하겠느냐만 엄청난 고통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치료가 끝나니 하는 말이리라. 선거가 요로결석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가도 결과만 나오면 깨끗이 낫는 병. 당장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몇 년이 지나면 꼭 도지고야 마는 병. 티눈보다 못한 병.
꼭 아파야만 병이고 아프지 않다고 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병이야 대선이 끝나면 거짓말처럼 낫겠지만, 선거가 끝난 후 더 심하게 앓아야 할 중병이 오히려 더 걱정이다. 이번 대선이 특히 그렇다. 유력후보들이 하나같이 만성적인 질병인 차별과 혐오를 무기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후보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주셔야 한다"는 남초 커뮤니티의 글을 공유하고 "차별금지법 입법, 일방통행식 처리 바람직하지 않다"며 입법 반대 입장을 내비친다. 야당 후보는 아예, 혐오와 차별을 선거 전략으로 삼은 듯하다. "페미니즘이 저출생의 원인",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자유 침해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다. 대통령 후보라면 적어도 미래가치를 선도하고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는 통찰력과 시대정신을 갖추어야 한다고 믿었건만 우리 유력후보들의 시간만은 벤저민의 시계처럼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습게도, 정작 차별금지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호소하는 당사자는 현재의 대통령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여야의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시덕거리며 서로 악수를 나누고 늘 그렇듯 ‘협치’라는 이름의 만병통치약을 내놓을 것이다. 패배한 유권자들에게도 체념과 달관이라는 묘약이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티눈보다 못한 통증 때문에 외면당해야 했던 혐오와 차별이라는 이름의 후진적 만성질환은 크게 위중해질 것이다. 이 나라가 소위 선진국이라기에 더욱 더 고통스러워해야 할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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