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고령층 등 고위험군 관리 안돼
쪽방촌 등 취약계층은 사실상 방치
전문가들 "재택치료 표준화 필요"
고위험군이라지만 위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처받을 확률은 제로(0) 같아 보였어요. 아픈 것보다는 이대로 방치돼 큰일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죠."
서울 S구 거주 이모(31)씨
지난달 말 정부는 '재택치료 의무화'로 전환했다. 그러나 재택치료를 경험한 환자들은 불만과 불신에 가득 차 있다. 제때 치료를 못 받는 건 물론, 지역·빈부격차에 따라 진료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준비할 여유 없이 일괄적으로 시작한 탓이 크다.
이런 얘기도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부족하다 해도 관리를 받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단칸방이나 고시원, 쪽방촌 등 열악한 주거시설에 거주하는 이들은 사실상 가내 격리가 어렵다. 이 때문에 재택치료란 곧 '가족 간 연쇄 감염'을 뜻한다는 냉소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나서서 재택치료를 일정 정도 표준화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임산부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져도 … 두 시간 뒤에나 응답
7일 서울 S구에 사는 임산부 이모(31)씨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달 23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보름 넘게 재택치료를 받고 있다. 재택치료에 들어가자 체온계와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받았다.
이씨는 "보건소에서 산소포화도가 94 밑으로 떨어지면 바로 연락하라 했는데, 86까지 떨어져 문자를 보냈다"며 "그랬더니 2시간 뒤 '괜찮으세요?'란 연락만 왔다"고 말했다. 그는 "고위험군인데 방치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가족들이라도 편안하면 다행인데 그렇지도 못하다. 이씨 확진에 따라 남편 김모(35)씨와 세 살 된 아이는 친정에 따로 격리했다. 하지만 가족들 감염은 이어졌고 친인척 8명이 확진됐다.
일반 가정집에서 가족 간 감염 막기는 불가능
방역당국은 확진자의 경우 안방 등 집안의 별도 공간에 격리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화장실도 따로 써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수칙을 일일이 지키기란 사실상 어렵다. 이씨는 "엄마들 사이에선 아이가 학교에서 확진되면 그 가족은 100% 감염이라고 얘기한다"며 "잠복기까지 집에서 생활을 완벽히 차단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렇기에 재택치료를 원해서 택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입원을 원했지만 입원을 위해 병상 대기자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재택치료는 못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입원까지 대체 며칠을 기다려야 할지 몰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재택치료를 골랐다.
확진자라 못 나가는 데 현금만 지원
지자체마다 제공하는 서비스도 들쭉날쭉하다. 이씨의 경우 S구청으로부터 10만 원을 받았다. 이씨는 "물품 지원비 조로 가구당 10만 원을 주니 이걸로 식사라도 하라고 하는데, 확진자라 바깥 출입도 못 하는 상황에서 쓸모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는 다른 지역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 경기 용인시에서 재택치료 중인 권모(66)씨와 정모(65)씨 부부의 경우, 여러 즉석 식품은 물론 제철 과일에다 삼겹살까지 지원받았다. 이런 차이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대응력 차이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재택치료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는 "방역당국이 재택치료만 강조하며 기초지자체에 맡겨 놓은 게 문제"라며 "중앙정부가 재택치료 표준화에 더 노력하고 이를 위한 지원 또한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칸방, 쪽방촌, 고시원 등 열악한 곳은 아예 방역 열외
그래도 이씨나 권씨는 관리나마 받는 편이다. 주거취약·저소득 계층은 재택치료를 한다 해도 집안 내 격리조차 불가능하다. 원래 방역당국은 재택치료 예외 사례로 가정 내 격리가 어려운 열악한 주거 환경일 경우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현장에서 열악한 주거 환경을 일일이 확인할 방법은 없다.
실제 지난달 서울 지하철 숙대입구역 인근 한 고시원에서는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났다. 이곳 거주자는 50~60대 기초생활수급자다. 시민단체 홈리스행동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8명이 줄줄이 감염됐는데, 그 기간 정부와 지자체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격리 원칙만 지켰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택치료에 대한 불만이 늘자 방역당국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대한의사협회와 손잡고 그간 재택치료 관리를 맡아온 의료기관을 '병원급'에서 '의원급'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재택치료를 받는 이들이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좀더 세밀하게 대응,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우선 서울시와 서울시의사회가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3,000명대 수준이던 재택치료자는 재택치료 전면화 방침 이후 이날 0시 기준 1만6,586명까지 늘어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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