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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은 보호자 욕심” 여겼지만… 엄마를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입력
2021.12.21 17:00
수정
2021.12.21 18:5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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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심소현 간호사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코드 블루(CODE BLUE). 코드 블루. 5층 내과 중환자실 OO내과."

병원 내 방송이 울리자마자 의료진은 하던 일을 멈추고 중환자실로 달려간다. 환자 주위엔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온 의사와 간호사들로 복잡하고 분주하다. '코드 블루'는 심장이 멈추거나 호흡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긴급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하니까 출동하라는, 의료진 간 호출 신호다.

‘코드 블루’가 발동된다는 건 지금 누군가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13년 경력인 나에게도 긴장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리일 수밖에 없다. 모처럼 쉬는 날 백화점에 들렀다가 흘러나오는 스피커 소리를 '코드 블루' 방송으로 착각해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환자들의 사례는 다양하다. 심폐소생술을 통해 극적으로 호전되는 환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짧게 생명을 연장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임종에 이른 상태지만, 보호자가 차마 환자를 보내지 못해 부득이 심폐소생술을 지속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 아니면 ‘당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심폐소생술은 무의미한 생명의 연장일 뿐이야.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보호자의 욕심 탓일지도 몰라!"

수많은 환자들의 심폐소생술을 지켜보면서 어느 새 나는 나름대로 정답을 작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상황을 실제 겪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감기 기운이 잘 낫지 않는 데다가 목이 많이 부어간다”고 하던 엄마는 결국 림프종으로 진단받아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주치의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어머님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하게 될 것 같은데, 어디까지 치료하시길 원하세요?”

엄마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했지만 100일 정도 지나 장 숙주반응(공여자의 면역세포가 수여자의 장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입원했다. 고용량의 약제들을 사용했지만,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접했고, 이런저런 상담도 해봤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주치의로부터 엄마의 상황을 통보받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엄마의 산소요구도는 최대치로 높아졌고, 패혈증(전신염증반응상태)으로 급히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기관 내 삽관을 시행했으나 혈압은 완화될 기미가 없었다. 산소포화도는 체크되지 않기 시작했다. 투석까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낮은 혈압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중환자실로 온 지 몇 시간 만에 결국 "코드 블루, 코드 블루. 5층 내과중환자실 혈액내과" 방송이 전 병원에 울렸다. 가망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치료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중지하고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인가.’

드디어 ‘결정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다가왔다. 가족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차마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누구도 치료 중단 결정을 섣불리 내리지 못했다. 우린 그렇게라도 엄마와 마지막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내 동료들은 우리 가족들의 간절함을 아는 듯, 자신의 부모처럼 엄마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약물 주입과 여러 검사를 진행했고 효율적인 소생술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심박동은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신 채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지금도 연명치료 여부를 선택해야 했던 '마지막 결정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공부하며 이론을 배우고 경험을 풍부하게 했던들, 어려운 결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연명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의학적 시술로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가족은 고통만 줄 뿐 의미 없는 과정으로 여겨 연명치료를 중단하지만, 또 어떤 가족은 적극적 치료를 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과연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고 없고라는 의료적 기준만이 과연 정답이 될 수 있을까.

평소 우리가족은 엄마의 연명치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은 곧 고통이며 슬픔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 이별 앞에 조금 더 일찍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했더라면 '조금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서 노화나 치료의 한계로 맞이하는 죽음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이 때문에 미리 가족들과 대화를 통해 스스로 결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엄마를 보내는 상황에서 내게 힘이 된 것은 중환자실 동료들의 헌신이었다. 엄마를 내 가족처럼 돌보는 의료진을 통해 큰 위로를 얻었고, 엄마를 떠나보내고도 살아갈 힘을 지탱할 수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돌보는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진심 어린 위로와 최선의 치료로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난 정답이 있지만 또한 정답이 없는 중환자실에서, 여러 사연을 안고 들어온 중환자들과 만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내과중환자실 선임간호사

서울성모병원 내과중환자실 선임간호사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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