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24>의원 5명 개정안, 노동자 임금명세서 달라질까
여당 "야당 간사가 소극적", 야당 간사 "아니다" 발끈
“도급인(원청)은 수급인(하청)이 근로자에게 지급하여야 할 임금에 해당하는 비용을 다른 비용 등과 구분하여 지급하여야 하고, 그 수급인은 수령한 임금 비용을 임금 지급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아니된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파견사업주(파견업체)가 사용사업주(원청)로부터 받을 수 있는 관리 비용 등은 파견근로자의 임금 총액 대비 고용노동부 장관이 결정·고시한 비율을 초과할 수 없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용역·파견업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임금 착복을 막기 위해 발의된 법 개정안이다. 중간 용역·파견업체가 노동자 임금 일부를 떼어 가서 생기는 문제인 만큼 용역업체는 노무비 전용계좌를 사용하도록 하고, 파견업체는 정해진 수수료만 떼도록 해 부당한 중간착취를 막자는 것이다.
한국일보가 올해 1월부터 중간착취 실태를 보도한 후 5명의 국회의원이 중간착취를 막는 법안 8건을 발의했다.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기존 법에 단어 하나, 조항 하나만 새로 넣어도 노동자들의 월급 명세서가 달라질 수 있는 법들이다. 하지만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국회에서는 아직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임금 전용계좌’ 사용 의무화하자”는 법안
현재 대부분의 원청은 용역업체에 노동자 임금, 경비, 관리비, 이윤을 모두 더해 총액으로 지급한다. 용역업체가 이 중 노동자 임금의 일부를 이윤으로 취해도 확인할 방법도,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이에 원청이 경비, 이윤 등만 업체에 지급하고 임금은 노무비 전용계좌에 지급하도록 하자는 방안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중간착취가 가장 만연한 곳인 건설업의 경우 공공부문에서 발주한 공사는 노무비 전용계좌를 사용하도록 법제화돼 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노동자 임금 전용계좌 개설·지급법’을 발의했다. ‘도급 계약 금액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인 사업’은 공공과 민간 모두 임금 전용계좌를 사용하도록 근로기준법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바꾸자는 것이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 역시 같은 달 임금 전용계좌를 도입(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한 하도급 대금 수령 및 임금 지급)하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단 전용계좌 도입을 ‘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으로 한정, 공공부문에만 적용하자는 안이다.
발의된 지 한 달가량 지난 이 법안들은 아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법안 소위원회에서 논의되지는 않았다. 박대수 의원실 관계자는 “임금 전용계좌는 이미 건설업 등에서 하고 있어서 공공부문에 도입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없을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 법안 소위에서 논의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준병 의원실 관계자는 “소위에서 심사할 법안을 합의하는 환노위 여야 간사에게 이 법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며 “최대한 빨리 논의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 수수료 상한 정하고, 근로계약서에 명시” 법안
파견 노동자들 역시 법 밖에서 깜깜이로 일하고 있다. 원청이 파견업체에 자신의 임금으로 얼마를 주는지, 수수료는 얼마를 떼는지 알지 못한 채 대부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고 있다. 업체가 수수료를 얼마를 떼든 법 위반도 아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명의 의원(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대수 의원,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수진·박대수 의원 안은 파견업체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 비율’까지만 수수료를 떼도록 상한을 정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법에는 수수료 상한조차 없다.
원청이 주는 돈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들도 발의됐다. 강민정 의원은 원청과 파견업체가 근로자 파견 계약을 맺을 때부터 파견 노동자의 임금을 명확히 정하고, 이를 파견업체와 노동자가 맺는 근로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근로계약서에 임금 등 원청-파견업체 간 계약 내용을 명시하게 하는 것은 강 의원 법안이 유일하며, 촘촘하게 중간착취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는 원청-파견업체 간 계약서에 임금, 경비, 이윤 등을 모두 합한 총액인 ‘파견의 대가’만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파견 대가의 세부 내역은 노동자가 요구할 때만 파견업체가 알려 주도록 돼 있다. 윤미향 의원은 그 세부 내역을 노동자에게 서면으로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냈다.
강민정 의원은 원청이 시중노임단가를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해도 낙찰률을 적용하면 결국 최저임금 수준으로 떨어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파견 근로자의 임금에는 낙찰률을 적용해 감액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낙찰률은 경쟁입찰에서 낙찰된 업체가 제시한 금액으로 도급액이 정해지는 것으로, 전체 도급비를 낮춘다.
박대수 의원은 직업소개소가 노동자들에게 수수료 법적 상한(1%)의 10배인 10%나 떼는 불법이 팽배한 현실을 감안해 직업안정법 개정안도 냈다. 수수료를 더 받을 경우 현행 1,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시급한 법안에 밀려서..." 한 번도 논의 안 돼
강민정·이수진·윤미향 의원의 파견법 개정안 3건은 이미 올해 3~5월에 발의됐다. 하지만 국회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새로 발의된 노동 관련 법안은 환노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뒤 노동법안 소위의 심사대상이 되어야 논의가 시작된다. 심사대상 법안은 환노위 여야 간사가 합의로 정한다. 파견법 개정안은 6월 전체회의에 상정된 후 소위로 갔지만 심사 대상 법안에는 포함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
파견법 개정안이 심사되지 못한 데 대해 환노위 여당 위원실 관계자는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시급한 법안에 밀려서 그렇다”며 “처리할 노동 법안이 많은데, 야당 간사(임이자 국민의힘 의원)가 소위 개최에 소극적이라 법안 심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동법안 소위는 올 하반기 중 12월에만 6차례 열렸을 뿐이다. 국회법에는 '법률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는 매월 3회 이상 개회한다'고 돼 있다. 임이자 의원은 소위 개최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반발했다. 임 의원은 "쟁점 법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얘기하고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노동법안 소위가 적게 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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