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사건' 진범 무혐의 처분 김훈영 검사
재심서 무죄 받은 최군 15년 만에 만나 고개 숙여
"잘못된 판단으로 고통 줘" 검사 개인 사과는 처음
"심적 고통 컸지만 손 잡아준 그에게 오히려 감사"
한국일보 인터뷰서 "검사의 책임 뼈저리게 느껴"
“검사로서 제 처분으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군 사건에선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미안함이 너무 컸습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최모(36)씨 앞에 현직 검사가 나타났다. 검사에게는 '최씨'보다는 '청년 최군'으로 각인돼 있었다. 이날 최군을 만나러 전주를 찾아간 이는 2006년 진범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림으로써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최군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버린 당사자, 김훈영 부장검사였다.
두 사람은 15년 전 검사와 피조사자 신분으로 만났지만, 이날은 사과하고 사과받는 사이로 마주했다. 껄끄럽고 불편한 자리일 수 있었지만, 김훈영 검사의 진솔한 사과에 최군은 그 자리에서 그를 용서했다.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검찰 조직에선 이런 이치가 통하지 않았다. 재심을 통해 결과가 뒤집혀도 기관 차원에서 사과한 적은 있었지만, 정작 사건을 처분한 검사 개인은 조직의 그늘에 숨은 채 어느 누구도 과오를 고백하며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김훈영 검사는 그런 점에서 언론을 통해, 그리고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사과한 최초의 검사였다.
김훈영 검사는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최군이 저를 만났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도 환하게 웃으며 대해 주니까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피해를 본 최군을 직접 찾아가 사과하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해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훈영 검사는 최씨를 직접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는 아니다. 최씨가 징역 10년이 확정돼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진범을 조사해 놓고도 무혐의 처분했던 검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무게’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처분의 무게’ ‘서명의 무게’ ‘책임의 무게’… 김훈영 검사는 최군이 2016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바로 그 날, 자신이 면죄부를 준 진범이 긴급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마음은 돌덩이 같았을 것이다. 그는 이후 자신의 과거 처분에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돌이키고 또 돌이켰다고 했다. 물론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약촌오거리 사건 이후 검사의 책임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검사의 존재 이유나 마찬가지인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 그로 인해 최군이 장기간 고통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오랫동안 짓눌렀다.
이따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 그는 인터뷰 말미 "사람이 사람의 일을 판단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로선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처분이었지만, 검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한 것이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게 드러난 이상 책임지고 사과하는 게 맞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사심을 갖고 사건을 처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였다.
-최군을 직접 만나서 사과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검사로서 평소 내 처분으로 억울하고 아픈 사람이 없길 기도하며 살아왔고, 이를 위해 나름 밤잠을 설치며 여러 사건들을 맡아왔다. 하지만 최군 사건에선 내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고, 내 처분으로 인해 가슴 아파했을 최군에게 사과하는 게 맞다고 봤다. 검사로서의 자존심보다는 인간적 측면이 중요했다. 최군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크고, 그런 감정이 그를 만나게 한 것 같다.”
-최군에게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있었나.
“그렇다. 내 잘못된 처분으로 피해를 당한 최군에게 사과할 마음은 늘 있었다. 다만 사과할 마땅한 방법이나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1심 소송 중 최군을 대리하는 박준영 변호사가 사과를 제안했다. 사과의 기회를 마련해 준 박 변호사에게 감사드린다. 1심 과정에서 제 변호사를 통해서나마 미안함을 전달했고, 2심 진행 중 박 변호사 중재로 최군을 직접 만나 사과할 수 있었다. 소송과는 무관하게 최군에게 사과하고 아픔을 달래고 싶었다. 현직 검사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사과를 통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최군은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되자 국가와 익산경찰서 이모 반장, 김훈영 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올해 1월 승소한 뒤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래도 사과하고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최군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실제 만나기까지 고민도 많았고 심적으로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걸 용기를 냈다고 평가하는 건 어울리지 않은 것 같고,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최군이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주지 못했던 검사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용기를 내준 최군에게 감사하다."
-당신이 '약촌오거리 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지휘하지는 않았다. 당시 어떤 역할을 한 것인가.
“나는 (택시기사를 살해한) 진범 김모씨에 대해 2006년 군산지청 근무 당시 무혐의 처분을 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2000년 발생했고, 최군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던 2003년에 진범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경찰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군산지청에 있던 선배 검사가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하고 수사가 제대로 안 되다가, 내가 부임한 뒤 2006년에 최종적으로 (진범 김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이다. 2010년 최군이 출소한 뒤 재심을 통해 2016년 무죄가 선고됐고, 이후 진범 김씨는 구속기소돼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3년간 묵혀 있던 진범 김씨 사건을 2006년 다시 들여다봤을 당시 상황은.
"굉장히 어려운 사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범 사건을 처리할 때 상당히 고민이 많았다. 김씨 사건도, 최군 사건도 명백한 물증이 없어 진술을 꼼꼼히 분석해야 했다. 모든 사건 기록을 한 글자 한 글자 빼놓지 않고 봤고, 큰 전지에 모든 관계자 진술을 써가며 분석하고 모순점도 찾으려 했다. 물증을 찾을 수 있는지 살펴봤지만 안 나왔다. 결국 당시엔 (진범) 김씨가 유죄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
-결과적으로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모양새가 됐다.
"내가 당시 유죄 확신의 기준을 너무 높이 가졌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된다. 특히 진범이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게 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씨를 무혐의 처분하기 전에 김씨와 최군을 불러 대질조사를 했다. 상대를 조사하면서 반응이나 태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정도를 면밀히 보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적극적으로 호소하지 않는) 최군에게서 '억울함'을 캐치하지 못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쌓인 낙담과 절망감이 20대 초반 청년에게 자포자기 형태로 나타난 것인데, '그걸 읽어내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최군이 재심에서 무죄가 나오고, 진범 김씨가 체포됐을 때 심정은.
“사실 2006년 처분 이후 전국 검찰청에서 매일매일 쏟아지는 사건에 파묻혀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다가 재심 소식을 들었다. 당시엔 내가 내린 처분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검사로서 제대로 판단한 것인지 걱정되고 고민도 됐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검사라는 자리가 얼마나 책임이 크고 무거운지 뼈저리게 느끼며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다.”
-8월에 전주에서 최군을 만났을 때 어떤 얘기들을 주고받았나.
"최군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친구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나를 환하게 웃으며 대해줬다. '처음부터 검사님께는 아무런 감정 없었어요'라며 좋은 말도 해주고. 서로 웃으며 옛날 얘기도 하고, 앞으로 잘 살자는 얘기도 했다. 최군이 값진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는 얘기도 건넸다. 15년 전에는 검사와 참고인의 관계였지만 그날은 인간 대 인간으로 잘 지내자는 얘기를 했다.”
-당시 진범에 대한 수사는 주변 사람들의 용기 있는 진술에서 시작된 것으로 안다. 특히 경찰에서 황상만 반장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1년 가까이 수사했다. 그분들 입장에선 당신의 무혐의 처분에 허탈했을 것 같다.
"진술하기 어려운 사건임에도 진범이 따로 있음을 용기를 내서 진술한 분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진범 사건을 소신과 끈기로 수사한 경찰분들, 실체적 진실을 밝혀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군산지청 검사님들께도 경의를 표한다."
-진범이 누군지에 관심이 쏠리면서 정작 살해당한 택시기사 이야기는 묻힌 측면이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을 것 같다.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은 가족들을 위해 택시를 몰던 선량한 시민을 살해한 사건이다. 비명에 생을 마감한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유족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검사로서 진범을 밝혀내 처벌함으로써 피해자와 유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렸어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아 죄송할 따름이다.”
-검사들이 과거에 맡았던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법원 판단이나 검사 처분도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검사도 사람이라 실수할 수 있다. 물론 처분하기까지 충실히 수사하고, 냉철히 판단하고, 합당한 결론을 내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중에 그 판단이 잘못됐다고 나올 수도 있다. 검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한 인간이 고통받은 데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고, 사과할 수 있으면 사과해야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약촌오거리 사건을 보면 3명의 검사가 등장한다. 2000년 최군을 기소했던 검사도 있고, 2003년 진범 김씨 사건을 지휘했던 검사도 있는데, 김씨를 무혐의 처분했던 당신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왜 나한테만…’하는 생각은 없었나.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최종 처분한 검사의 무게라고 본다. 그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앞의 두 분 검사도 있고 최군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1·2심 판사님들도 있지만, 그분들도 당시엔 사심 없이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왜 나한테만…'이라고 따져본다면, 내가 (진범에 대해 최종 무혐의) 처분했기 때문이다. 검사는 결정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처분한 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최종 처분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법원이나 검찰 판단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 사건 여러 절차에 관여됐던 판사와 검사들의 문제점과 잘못은 내가 사과하고 최군을 만난 것으로 잘 정리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분들의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이나 이런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검사는 어떤 존재여야 하나. 검사로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 것인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부장검사가 되기 전부터 늘 후배들에게 ‘품격 있는 검사’가 되라고 말하곤 했다. 먼저 법률가로서, 준사법기관인 검사로서, 철저하게 수사하고 공정하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합당한 처분과 결정을 내릴 능력을 갖춘 검사가 돼야 한다. 그리고 피의자든 피해자든 어떤 사건 관계인이든 인간적으로 충실히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고, 경청하고 예의를 다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갖춰질 때 검사로서 품격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진범 사건을 처리할 때 사심이 있었거나 사안 자체를 가볍게 보고 대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갖고 있던 능력과 지식을 모두 동원하고 여러 자료를 뒤져가며 나름의 답을 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 점에 대해선 아쉬움이 크다. 물론 최군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크다. 정말 미안하다."
※한국일보는 14일 김훈영 검사의 사과에 대한 최군 측의 입장을 보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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