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25> 인터뷰 1년 후, 노동자들의 이야기
"수술로 1,2주 쉬어야 한다니 권고 사직
용역업체는 실업급여 신청도 못하게 했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2월 100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인터뷰해 올해 1월 보도했다. 다달이 수십~수백만 원을 떼였고, 온갖 부당한 일들을 겪고 있었다. 1년 만에 그중 3명에게 근황을 묻고, 정치권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함께 들어 봤다.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다 3개월 전 퇴사한 강지선(40·가명)씨는 "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 국회의원들도 최저임금 받고 일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회에도 용역 체계를 두는 건 어떨까요. 일부 의원은 국회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일부 의원은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한 후 월급 절반을 떼는 거예요. 아무리 말해 줘도 자신이 겪어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아픔은 모르잖아요. 우리처럼 살아보면서 이 문제를 좀 뜯어고쳐 주면 안될까요."
그가 10년 동안 일한 용역업체에서 받은 퇴직금은 2,000만 원이 안 됐다. "왜 더 빨리 그만두지 못했을까, 왜 이런 직업에 보람을 느끼며 일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고 한다. 수술을 앞두고 있던 그는 수술 후 1, 2주는 쉬어야 했지만 용역업체는 병가 제도가 없다며 연차를 사용하라고 했고, 결국 지점에서 권고사직을 제안했다.
겨우 받아들였는데, 용역업체는 실업급여도 신청해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갑’인 은행 본사가 용역업체에 요청하자 실업급여를 받게 해줬다. 업체 쪽 관리자는 그에게 “대부분 못 받고 나가는데 대단하다”고 했다. 실업급여 신청 요건이 되는데도 용역업체는 정부의 고용지원금을 받을 때 불이익이 있다며 이조차 해주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업체로부터 마스크 한 장 받은 적이 없었다. 구직을 준비 중인 지선씨가 말했다. "무슨 일을 하든 용역업체는 절대 안 갈 거예요. 죽어도 가기 싫어요."
이우열(가명·43·자동차부품제조 노동자)씨는 중간착취를 근절하면, 자연스레 정규직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원청이 주는 노무비를 떼이지 않게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면, 원청 입장에서도 굳이 중간업체의 이윤을 따로 챙겨주면서까지 이런 체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씨는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면 ‘기형적인 정규직화’가 진행되고, 결국 중간착취의 악습은 그대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는데 공기업들이 비정규직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모회사 직원들과 같은 일을 할 때조차 임금 차이는 여전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또 "소송을 통해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은 노동자들이 꽤 많은데, 이전에 고용노동부와 검찰 쪽에서 사측 손을 들어줬다"며 정부의 사측 편향적인 결정을 비판했다. 그는 "결국 입법부가 이와 관련한 법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중간착취를 없애려면 정치권이 정규직에 대한 확실한 정의와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변화 없는 상황에서 자포자기도 느낄 수 있었다. 정보기술(IT) 개발자인 김현수(26·가명)씨는 "지난해 2월 온라인 구직 사이트에서 개발자 모집 글이 있어 지원했는데 신입개발자를 3년 경력으로 부풀려서 고객사에 파견하고, 월급의 100만~250만 원을 떼어먹는 '보도방'이었다"며 "지금은 다른 정상적인 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순간도 인건비를 착취하는 보도방은 성업하고 있고, 피해자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나 정치권에는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며 "코로나19 방역수칙조차 지키지 않고 술판을 벌이던 그들"이라고 비판했다. 현수씨는 각자도생이 현재로선 유일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냈다.
"인력 보도방의 경우 모집공고에 자바(JAVA)나 자바서버페이지(JSP) 등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반면 정상적인 회사는 사업의 내용과 필요한 기술 스택 등을 상세하게 명시해요. 피해자가 몸을 사리는 방법밖에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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