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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방식으로 제일 근사하게, 삶의 끝도 그다웠던 기자 이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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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방식으로 제일 근사하게, 삶의 끝도 그다웠던 기자 이용마

입력
2021.12.13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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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창사 6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MBC 창사 6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는 2019년 세상을 떠난 해직기자 이용마의 근사하고 존엄한 인생 마지막 시간을 비춘다. MBC 제공

MBC 창사 6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는 2019년 세상을 떠난 해직기자 이용마의 근사하고 존엄한 인생 마지막 시간을 비춘다. MBC 제공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반드시 돌아오겠다.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약속한다.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2017년 12월 11일, 이용마(당시 48세) 기자는 휠체어를 탄 채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 깔린 레드카펫을 통과한 후 이렇게 말했다. 5년 9개월 만에 복직한 이날 첫 출근은 마지막이 됐다. 당시 복막암 투병 중이던 그는 2019년 8월 유명을 달리했다. 2년 만에 그가 약속대로 돌아왔다. 지난 2일 방영한 MBC 창사 6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를 통해서다.

하는 수 없이 이 작품은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취임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시간을 담는다.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던 MBC 노조는 2012년 1월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긴 싸움을 시작한다. 세계 언론 역사상 최장 기간을 기록한 그 파업이다. 앞단엔 노조 홍보국장을 맡았던 이용마가 있었다. "노조에 가면서 '아이고, 해고가 되겠구나' 하고 갔거든. 설마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나..." 예상대로 파업을 시작한 지 36일 만에 그는 해고됐다. 파업 첫 해고자였다. 당시 쌍둥이 아들이 5세였다. 그 후로 2,103일간 MBC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8년 12월 이용마 자택에서 함께 한 이용마(왼쪽)와 김만진 PD. 김 PD 제공

2018년 12월 이용마 자택에서 함께 한 이용마(왼쪽)와 김만진 PD. 김 PD 제공

이 작품을 연출한 김만진(50) PD는 "2년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마음의 빚을 덜었다. 2018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카메라에 담은 이용마의 마지막을, 그와의 약속대로 다큐멘터리로 완성하면서다. 2018년 당시 김 PD의 관심사는 '웰다잉'이었다. "마지막을 주체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던 송영균씨 이야기를 담은 다큐 '내가 죽는 날에는'을 만들면서 이용마를 떠올린 건 그래서였다. 그에게 이용마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제일 근사하게 죽은 사람"이다.

"배가 복수로 차서 남산만 한 채로 대중집회 무대에 올라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지배구조 개선을 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한 형이라고 생각했죠." 2017년 3월 광화문 촛불집회에서였다. 이용마는 투병 중에도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이런 뜻은 다큐 말미에도 담겼다. "용마 형이 제일 하고 싶었던 얘기"라서다. 그러면서도 김 PD는 이 다큐가 정치적으로 비치는 것은 경계했다. 당장 일부에선 "대선 앞두고 선거운동하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김 PD는 "개인적 소신은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거리를 두고 객관화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MBC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는 이용마의 인간적 모습을 비춘다.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용마. MBC 제공

MBC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는 이용마의 인간적 모습을 비춘다.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용마. MBC 제공

다큐는 오히려 이미 잘 알려진 투쟁가 이용마 대신 그의 인간적 모습을 주로 비춘다. 사후 자신의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납골당을 찾는 장면으로 이용마는 처음 얼굴을 내민다. 그는 누구 탓도 하지 않는다. '노조에 가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질문에 그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파업하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죠. 그때 스트레스가 발병의 한 원인이지 않을까 막연하게 추측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노조를 안 갔다면 제 마음이 더 많이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럼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이용마는 '송창식의 노래와 같이 낙천적이고, 허밍웨이의 소설과 같이 낭만적인 삶'을 꿈꿨다. 방송 캡처

이용마는 '송창식의 노래와 같이 낙천적이고, 허밍웨이의 소설과 같이 낭만적인 삶'을 꿈꿨다. 방송 캡처

김 PD의 기억 속 이용마는 "꼬장꼬장한 형"이다.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는 게 없이 자신만의 원칙으로 조직 내부에 문제제기를 해서 때론 동료들을 불편하게 하는 기자"였다. 마지막도 그다웠다. 김 PD는 "이용마는 죽음에 이르는 그 시간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인생의 마지막을 자기 주도적 방식으로 죽어갔던 사람"이라고 했다. '송창식의 노래와 같이 낙천적이고, 헤밍웨이의 소설과 같이 낭만적인 삶'을 꿈꿨던 이용마. 부디 다음 생엔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이 다큐는 MBC 홈페이지와 웨이브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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